(골로새서) 2:16-19 머리로 인하여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골로새서 Date : 2015. 1. 28. 14:06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를 향하여 세상의 철학과 과학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시며 하시는 말씀 안에 머리와 몸과 그림자와 같은 말씀이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다. 교회라는 곳은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머리는 몸의 모든 정체성을 주관하는 곳이다. 정체성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이라기보다, 그 몸의 모든 행동과 모양을 머리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몸의 모든 것이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학적인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기본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표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임을 말씀하시겠다는 것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성품이 육신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표현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열매이자, 그 표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책으로 사람에게(만) 읽혀지는 것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의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실 때부터 정하신 사람의 창조 목적이고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남의 뜻, 즉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이 하나님의 뜻이 바로 머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나 사람의 삶이나 모두 이 머리가 지시하는 것을 행하고, 이 머리가 표현하는 것을 나타내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이런 것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그것이 바로 '중풍'이다. 즉 머리의 뜻이 몸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이다. 즉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고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이며, 그 고쳐진 상태가 되어야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니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되는 그리스도가 몸을 주관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의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어야 온 몸이 자라고 장성한 사람의 삶을 살게 되기 때문에 바울 사도가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면에 철학이나 과학과 같이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뜻과 상관없는 것에 따르는 것은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인 것이다.


또한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절기와 같은 모든 것은 다 머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비롯되어 표현된 모양일 뿐인데, 그것을 잘 지켜 행하여야 한다고 논쟁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은 다 빛이 몸에 비쳐서 그림자가 나타나듯이 복음, 곧 그리스도께서 보이시고 바울이 전하고 에바브라가 전한 복음이 머리가 몸을 주관하듯 하면 나타나는 것일 뿐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더불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 있어 중요한 방향의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생명이 있으면 그 생명의 본능을 따라 나타나는 행동과 법과 규범들이 본질로 오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인가 하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성품이 사람의 육신과 삶을 통하여 어떻게 표현되어지는가를 기록한 말씀이 성경인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성품, 머리와 같고,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성품이 표현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은 뒤로 두고 거꾸로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내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그런 생각은 선악과에서부터 시작된 오래된 유전이다. 선악과를 먹은 이유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에 대하여 오해했고 스스로 그 방법에 대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즉 어떤 것이 선한 것(하나님처럼 되는 것)인지를 하나님과 다르게 스스로 생각했다는 것인데, 그 유전이 지금에 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서신을 보내는 이때의 상황도 다를 바가 없어서, 사람들이 세상의 철학과 과학과 같은 것이 가미되었을 때 더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전하는 에바브라의 말은 듣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과학과 철학은 몸이 아니라 그림자며, 그것은 머리에서 전달된 뜻이 아닌 세상의 헛된 속임수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울 사도는 과학이든 철학이든 그런 세상에서 비롯된 것들은 다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될 것이지, 그것 자체가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누누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는 세상의 것,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이 더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 화려하고 좋은 교회일수록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은 골로새 교회 당시에 과학과 철학과 같은 세상의 것이 교회 안에서 더 인정받는 그런 모순과 전혀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교회라는 공동체에 국한된 말씀이 아니라, 한 개인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에 있어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면 성경의 말씀은 스스로 부인하려 해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또 말하지만 성경은 지켜서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께 있으면 표현되는 삶의 모양을 말씀하신 책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성령의 감동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십자가를 보고 자신도 예수님과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하는 분이 바로 성령이고, 그것이 성령의 감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말씀을 지켜서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백조를 보고 자신이 백조인 것을 발견한 미운오리 새끼처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 정체성에 순종하면 백조가 되듯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 사는 삶의 모양이 기록된 성경과 같이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질과 순서가 바뀌고 머리에서 몸으로 뜻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되어 머리를 움직이려 하고, 그리스도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져야할 과학이나 철학과 같은 세상의 것이 복음보다 인정을 받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골로새서를 통하여 내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