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3:1-4 위의 것을 생각하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골로새서 Date : 2015. 2. 1. 13:29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위의 것?" 그것이 무엇일까? 어떤 것이 위의 것인가?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과 연관이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성경에는 위의 것이라는 것이 많이 나온다. 이런 위의 것을 총칭하면 하늘이다. 골로새서의 본문에도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위(上)>의 대명사는 바로 "하늘"이다.


하늘과 땅은 분명한 관계성이 있다. 즉 땅은 어떤 경우도 하늘의 뜻을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떤 땅도 다 말라 버린다. 또한 하늘이 비를 내리기 시작하면 어떤 땅이라도 다 젖고, 하늘이 추워지면 땅도 추워지고 하늘이 여름이 되면 땅이 여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모든 것은 다 하늘의 변화에 맞추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이것이 바로 '위의 것'의 한 단면이다. 즉 땅과 아래의 모든 것에 대한 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이고 그것이 위의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이라고 하면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보이는 파란 하늘을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늘은 그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땅 곧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모든 뜻이 있는 곳을 "하늘"이라고 한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사람의 존재 목적이 하늘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는 '위의 것'은 바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사람의 존재목적,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 삶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뜻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을 다시 살리시는 뜻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위의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사신 것과 같은 법으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위의 뜻,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듯 자신에게 이루어짐으로 그것을 산 생명으로 보시는 하나님께서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법으로 인하여 살리심을 받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법, 곧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는 하늘의 법이 아닌 땅의 법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땅의 것이 하늘의 것을 더럽히기 때문이 아니다. 땅의 모든 것은 다 하늘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하늘 곧 위의 것만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인데, 신앙에 있어 땅의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더하여야 더 좋은 신앙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땅의 것이 위의 것을 훼손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땅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위의 것으로 부족하다는 것이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살리신 법이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땅의 것은 위의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오히려 땅의 것으로 위의 것을 보완하려는 어리석음이기 때문이다.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보다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성경의 많은 사도들이 말씀하고 경계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신앙을 가감하는 것이다. 즉 하늘의 뜻, 위의 뜻 곧 하나님의 뜻이요 그리스도를 살리신 뜻을 가감하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믿지 않는 것보다 악한 것이다.


지금 골로새 교회의 사정이 그러했다. 철학과 과학에 대하여 알고 이것을 복음과 결합하여 화려하게 보이는 말과 이론으로 사람들을 미혹했을 때, 사람들이 신앙에 과학이나 철학을 더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즉 신앙을 가감했고, 땅의 것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골로새 교회에 있었던 그런 현상은 오늘날도 만연한 사상이다. 만약 오늘날 그런 사상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골로새서와 같은 성경을 읽게 두실 이유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더 지식 있고, 더 공부하고, 더 부유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 믿는 것이 유익하리라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미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신학을 해야만 교회에서 설교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신앙을 학문으로 공부해야(그것이 맞는 것인지 모르지만)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 할 수 있다고 하고, 돈 많고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있으면 장로가 되기에 유익한 것이 다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현 시대의 교회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위의 것은 땅의 것과 다르다. 오히려 땅의 것이 아무리 만연해도 하늘이 바뀌면 다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겨울에 아무리 눈이 많이 와서 땅에 쌓여 있어도 하늘이 봄이 되면 다 녹고, 가뭄이 들면 사람들이 아무리 물을 땅에 뿌려도 하늘에서 1~2미리 비가 오는 것만 못할 뿐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와야 땅이 바뀌는 것이듯, 땅에 있는 과학이든 철학이든 재물이든 명예든 그 어떤 것이라도 다 위의 것에서 비롯되어야 하는 것이다.


위의 것, 그리스도를 살리신 법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재물이나 명예에 있지 않고, 십자가에 있는 법이다. 십자가의 법이라는 것은 인간이기만 하면 누구라도 인정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 그것뿐이다. 즉 지식이 없어도, 재물이 없어도, 명예와 고상함이 없어도 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인 곳이 바로 십자가의 법인 것이다.


사람에 땅의 것 어떤 것으로 설사 최고가 된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최고인지, 인생의 목적 안에서 행복한 것으로 최고인지 알 수도 없고, 또 그렇지도 않다. 설사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더 문제가 된다. 아무나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이 있어야 행복하고 사람의 존재 목적을 알 수 있다면 그럴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도 믿을 필요도 없고, 행복을 위해 수고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하루 하루 흥청망청 살아도 된다. 어차피 1등 밖에 안 되는 구원인데 어떻게 하겠는가?


하지만 십자가의 법은 오히려 그 반대다. 세상에서 뛰어나야 행복할 수 있다는 법 앞에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그런 곳이 바로 십자가가 이기 때문이다. 초라한 꼴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유대인이라 왕이라 하니 죽임을 당한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늘 힘겨워 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인 것이다. 1등을 할 수 없어서, 육신 이상의 힘을 발휘하여 성공하여 모든 것을 가진 존재가 될 수 없어서 돌아서면 "을"이 되고 죄인이 되는 그 모습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위의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다.


그 위의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고 존재의 목적이다. 그것이 있고 나서 땅의 것이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비가 와야 땅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인정하는 하늘의 뜻이 땅과 같이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본질이고 내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땅의 것을 그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의 것을 하늘의 것과 혼용하거나, 땅의 것이 더해져야 더 좋은 신앙이라거나, 하나님께서 사람의 본질을 알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율법과 기적과 같은 것을 본질로 알고 신앙에 더하는 것은 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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