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에는 결혼, 간음과 연관된 바울 사도의 권면이 많이 있다. 고린도전서가 기록된 시대는 육신적인 간음 문제가 제법 있었다는 걸 역사적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시대적 상황이 바울 사도의 권면과 무관하진 않겠지만 바울 사도의 권면은 육신에 한정된 권면은 아니다. 육신의 간음 방지를 위해 혼인하라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한다.

 

결혼에 대한 바울 사도의 권면의 본질은 육신의 간음 방지 차원의 말씀이 아니다. 우선 성경이 말씀하시는 간음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 아닌 다른 걸 사람이 믿고 수용하는 것이다. 간음이란 자기 짝이 아닌 것과 하나되는 것이라는 게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다.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가 하나님의 성품 아닌 것을 사모하고 따르고 수용하는 것,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간음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스스로 자기 몸을 주관하지 못하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주관한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다. 내용과 형식은 같이 있어야 존재한다. 내용만으로 혹은 형식만으로 의가 온전할 수 없다. 남편과 아내는 내용과 형식처럼 서로의 존재 의미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와 말씀이 육신이 되지 않으면 사망과 죽음의 상태인 반면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게 구원인 이유다.

 

이처럼 하나님의 정의와 남녀 간의 간음은 결이 같다. 자기 짝이 아닌 남자 혹은 여자와 관계하는 행위와 하나님의 의 아닌 다른 걸 사람이 믿고 순종하는 건 같다. 사람에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정한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자기의 짝이고 진정한 배우자이므로 다른 것을 목적으로 삼고 믿으며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삶 자체가 바로 간음이다. 이런 삶을 산다면 비록 육신의 삶이 아무리 순결하다고 해도 성경은 창기와 같다고 일갈한다.

 

에에 바울 사도는 앞에서 육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나는 말씀을 했다. 그 말씀 역시 설명한 간음의 본질과 궤를 같이 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본질적 의미 위에서 결혼이란 삶의 요소에 대해 설명하고 권면한다. 인생 자체의 본질, 삶의 진정한 짝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삶 자체가 순결한 사람이다. 이처럼 본질이 순결한 사람은 육신으로도 순결한 삶을 산다. 이런 게 생명의 본성이고, 성경 말씀의 프레임이다.

 

바울 사도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한 배경에는 이같이 삶이 순결한 사람이 되라는 근원적 권면이다. 이 세상의 결혼 제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순결과 간음의 정의는 사람으로서 존재의 목적이 회복된 삶을 설명하는 육신의 규범이다. 율법이나 절기, 규례가 모두 이런 법칙이 표현된 삶의 요소다.

 

따라서 본질이 회복된 사람에게 결혼이나 성경을 몸으로 지켜내려는 시도와 노력은 의미 없다.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일단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본성이 되었다면 그 삶 자체가 순결한 결혼이고 성경의 모든 말씀이 이루어진 사람이며 그의 삶 자체가 성경을 다 이룬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게 생명의 법이다. 생명으로 나면 그 생명의 모든 규범과 율법과 주기(절기)를 지켜낸다. 여기에 노력은 1도 필요 없다.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그 거듭난 삶이 복음임을 전하는 바울 사도가 자신을 본 받기를 원한다고 한 이유와 본받아야 하는 표본이다. 인생으로서 온전한 결혼이므로 이를 설명하는 제도로서 육신의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결혼하지 않는다는 신부나 수녀와 같은 신분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는 자기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고 수도한다. 그리스도로 나서 결혼의 의미를 완성했다면 그렇게 수도하고 노력할 이유가 없다. 마차가 말을 끄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정한 결혼의 본질, 사람에게 정해진 존재의 목적이 삶의 짝이 된 사람에게 육신의 결혼은 선택적 요소다. 경제, 사회적 이유로 결혼이 필수에서 선택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과 완전히 결이 다른 선택의 이유다. 그리스도로 났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육신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목적의 일환으로 결혼은 선택적 요소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인생의 존재 목적을 이루어가는 삶의 한 도구로써 선택사항이다. 바울 사도는 이 바탕 위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명령이 아니라 권면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정말 사실적으로 말한다면 결혼의 본질적 의미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에게 육신의 행태는 자유의 영역이다. 가감없이 말한다면 사회적 관념에서의 간음이 본질을 그르치진 않는다. 다윗과 같은 구약성경의 많은 인물들이 육체의 간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버린 사람이 되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당시 고린도 교회의 성도나 오늘날 육신의 노력으로 성경을 지키려는 노력을 신앙이라 믿는 사람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본질적 결혼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자기 삶의 목적이 된 사람이 아니다. 이건 생명의 법인데 노력한다는 자체가 이르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다. 이들에게 육신의 삶의 한 형태인 결혼을 자기 뜻으로 재단하여 결혼을 정의하고 선택할 권한이 없다.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히려 사회적 관습과 제도다. 사회는 노력으로 이르는 세계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가 육신의 정욕을 참지 못하면 결혼하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여기 있다. 육신의 정욕을 참지 못한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육신의 정욕이 자기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이므로 육신이 속한 세계의 법이라도 지키라는 뜻이다. 이 권면의 대상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는 이미 세상의 지혜를 좇고 있어 고린도전서가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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