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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 vs. 성악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 Date : 2013. 4. 30. 13:17 Writer : 김홍덕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관점도 아니고 그렇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라는 것이 있다. 성선설은 맹자가, 성악설은 순자가 주장(?)한 이야기다. 그런 학자들이 이것이 성선설이다 성악설이다 이렇게 규정하진 않았지만, 내용 자체가 인간은 처음에는 선한데 세상에서 악하게 되었다는 것과, 태어나기를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배워서 선하게 되어야 한다는 일면 상반된 논리가 바로 성선설과 성악설이다.

 

 

교회 안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에덴 동산에 처음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가 범죄함으로 쫓겨났으니 성선설 같고, 또 아담을 제외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은 성경에서 악하다고 하니 성악설인 것 같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것이기도 하니 이는 어떻게 보면 순자의 논리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논리가 다 사람의 행위에 기반을 둔 사상들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다. 즉 성선설이든, 성악설이든 여기서 말하는 선과 악은 사람의 행동에 관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관심은 아닐지라도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에 참여하게 되는 것 역시 사람의 선함과 악함이 그 행동양식에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람의 행동에는 선한 것이 있고, 반대로 악한 것이 있는데, 그 양단 사이에서 볼 때 사람은 원래 선한 행동을 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하는 관점인 것이다. 그리고 교육과 같은 여러 가지  사회의 역량이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어 그 반대로 가게 하는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성선설과 성악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기독교적인 관점은 어떤 것인가? 아니 기독교가 아니라 성경적인 관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성경에서는 선악과라는 것이 나온다. 성경은 사람이 선악과를 먹어서 악한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악함만 먹은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같이 먹어서 악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이 선과 악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하는 그것 자체를 악함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보고 “선한 선생이여” 했을 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하셨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하여 선하다 악하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것에 대한 정의는 하나님이 내리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은 하나님만이 정하신다는 의미인 것이다.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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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만 선과 악을 정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것은 세상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그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없으면 불가능한 믿음이다. 즉 사람의 눈에 아무리 선해 보여도 주인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나님만이 선과 악을 정하신다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선과 악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주신 목적에 부합하면 선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사람들의 일상에서도 같은 법이 적용되고 있다. 통화를 목적으로 산 전화기가 전화가 잘 안되면 악한 것이 되는 것처럼 사람들도 동일한 법 아래 살고 있다. 사람도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이다. 이렇듯 목적을 기준으로, 즉 그 존재의 목적을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 성경의 법이다.

 

또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근간이 되는 사람의 행동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살인도 전쟁과 평화시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사람에게 간음으로 보이는 알래스카인들의 행동도 우성 유전자를 종족에 유입시키려는 생존 본능이라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선한지 악한지는 그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에 맞는 삶을 사느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관점, 성경의 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선설이 되었던, 성악설이 되었던 사람의 행위 규범을 가지고 사람의 정체성을 논하는 모든 논리는 다 악한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출생과 함께 그 존재가 선한지 악한지를 가늠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다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라는 사명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가능성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목적 아래 살면 선한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자신의 의(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를 좇아서 살면 악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구원을 베푸신 것이라는 말씀도 맞고, 또 모든 사람이 죄악 가운데 있다는 것도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여 살 때에 온전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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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꽃과 같이(전자출판 교육을 받고)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4. 29. 13:42 Writer : 김홍덕

어제까지 3주간 토요일에 전자출판 실무과정이라는 교육을 받았다. 과정은 cocos2dx, Indesign, 그리고 Epub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시간인 cocos2dx는 게임툴인데 이것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편성되었다고 한다. 강의를 들어보니 아이패드에 있는 어린이용 동화,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었고, 두 번째 시간은 Indesign이라는 tool로 출판물을 만드는 것인데, 교회의 소식지나 잡지 같은 것을 만들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인데, 이제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에 있는 매거진을 만들 때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교육 받았고, 마지막으로는 전자책 format인 Epub에 대하여 공부했다.(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전자책으로 출판하고 있어서 수강하게 되었다.)

 

전자출판수료증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해보았다. 사실 프로그램을 가지고 문서나 출판물을 편집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거의 감각이다.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다는 것이다. 출판물을 만드는 프로그램의 사용법은 몇 시간만 해보면 다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렵다. 왜 어려운가? 그것은 contents가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만들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라기 보다, 만들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니, 이미 출판된 출판물들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어쩌면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어떤 출판물은 그것을 만드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 내용이 있다는 것이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대단해도 이렇게 배워서 출판물로 구성할 수 없으면 그 또한 허무한 것이다.

 

대학교 1학년 교양 국어과목의 한 학기 동안의 유일무이한 Report가 있었다. ‘도깨비’에 대하여 써 오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에서 다 찾아봐야 하는데 어디서 뭘 찾을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레포트의 분량은 달랑 3페이지였다. 그리고 수업 마지막 날 가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와 비슷했다. 그런데 한 2~3명이 거의 논문 수준의 report를 내었다는 것이다. 그때 모든 학생들이 하나 같이 말하기를, 어디서 그 많은 내용을 찾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게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을 Report로 써서 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것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것을 들여서 한 순간에 수렴시키는 것이다. 모든 꽃이 일년에 잠깐 몇 일 동안만 봉우리를 연다. 그것을 위해 일년을 보내는 것이다. 게다가 그 꽃 마저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열매에 있다. 이것은 이때껏 내가 생각해온 삶에 대한 정의와 다른 것이다. 삶을 화려하게 누리며 살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전체 기간에 비해 절대적으로 작은 시간과 삶의 분량을 위해 모든 삶을 준비하듯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치의 문제이다. 꽃 피우기 위한 1년이라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것인가? 아니면 목적인 열매를 소중하게 여길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효율에 관해서, 또 객관적인 가치 기준에 의하면, 몇 일 피우는 꽃을 위한 1년의 수고는 너무 어이 없는 것이지만, 목적을 가치로 여긴다면 1년 아니라 우담바라(Udumbara)처럼 3,000년도 좋은 것이다. 이것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 하는 이야기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데반의 삶도 참 대단한 삶이다. 내가 얼마나 은혜를 입어야 스데반 같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삶의 지금 놓인 이 한 순간,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향하여 1년 간의 수고로움을 뒤로 하고 단 몇 일 피는 꽃을 피우듯, 이 한 순간, 이 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 주신 순간에 감사하고, 사람을 만드신 목적을 전하는 것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라는 것을 새겨보게 된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기 까지 지난 삶에 대한 작은 회상을 가져보기도 한다. 아직 좀 남긴 했지만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짧은 삶을 살면서 겪은 모든 일들이 아무리 대단했다 해도(사실 별거 없지만…) 그것이 꽃을 피우듯 목적에 수렴할 수 없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인생의 존재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치를 깨달아서 이르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가치를 두는가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 그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 때, 삶의 모든 시간과 성과와 교훈과 깨달음, 그 모든 것을 발견한 가치에 수렴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삶의 모든 구성 요소 또한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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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장에 대한 새로운 묵상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4. 29. 09:58 Writer : 김홍덕

수 많은 자동차 부품들이 생산된다. 그것들은 매우 엄격한 기준에 의하여 설계되고 생산되고 검사되어 제품이 된다. 가공되는 과정도 만만하지 않다. 어떤 것은 엄청난 고열에서 녹여진 다음에 모양을 갖추게 되고 어떤 것은 또 아주 빠르고 날카로운 바이트(칼)에 의하여 깎여서 제품이 된다. 그래서 그 하나 하나의 가치는 때로는 아주 높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떤 자동차 부품도 자동차에 결합되지 못하면 그저 가능성만 남긴 체 별다른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자동차 부품은 자동차 부품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 결합될 목적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경륜을 받는 것도 그러하다. 어떤 사람은 아주 가난한 조건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이르고,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부유한 환경에서 그렇게 되기도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어려서부터 험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신앙이 자라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좋은 부모 밑에서 안정된 생활 중에 신앙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서 먼저는 “Ego Eimi”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맞게 경륜을 하신다는 것이다. Ego Eimi는 ‘나는 나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앙 안에서 경륜의 과정을 거쳐갈 때, 특히 곤고한 삶을 살아보면 “왜 내게 이런 일이?”라던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도무지 무슨 계획을 가지고 계시길래 내게 이렇게 하시는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륜 안에서 열심히 살다 보면 그 과정 과정에서 충분한 열매를 맺고, 또 그 안에서 교훈을 받아서 신앙이 자라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는 의문이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훈련만 하고 마는 것인가?’와 같은 의문, 다르게 표현하면 “언제까지 이렇게 연단만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 자신과 남들이 나의 경륜의 과정을 보며 교훈을 얻는 것은 좋은데 정작 나는 무엇을 얻는가? 하는 의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신앙 안에서 참 곤고한 중에 탄식 같은 의문이다.(그러나 자기 육신의 삶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신앙으로 아는 이들에게는 무관한 일이다.) 나 역시도 행위로 의롭게 되는 Do와 Have의 신앙을 떠나면서부터 지금껏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이것이었다. 그리고 객관적 기준에 의하면 별거 아닌 것 같은 삶일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힘든 과정들을 겪고서 이제 돌아보니, 그 모든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려진 것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한 세계에 대하여 <비밀>이라고 하셨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내가 창조된 목적에 앞서 있는 나의 가치였다. 그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운동에서 경기를 이기려 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기술을 보이려고 하는 것과 같은 모양인 것이다.

 

모든 인생의 가치는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 그때 가치가 부여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목적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세계에 대하여 눈을 뜨고, 그 세계의 창세기가 시작되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모은 인생의 삶은 서로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요한일서에서 요한 사도는 <사랑>이라고 했다. 즉, 사람에게 하나님이 사랑이시라고 했다. 하나님을 아는 것, 알게 해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목적이다. 그것이 자동차 부품에게 있어 자동차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하기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런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라고 했다. 이것은 한마디로 내가 하나님을 나타내어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에 사용되지 못하면, 자동차 부품이 자동차 안에 결합되지 아니한 것과 같이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말씀인 것이다. 신앙 안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떤 힘든 과정을 거쳐서 그 안에서 교훈을 얻어 간다 해도 그것을 복음을 전하는 것에 수렴시키지 못한다면 그 과정에서 어떤 교훈을 깨달았다고 해도, 또 어떤 승리가 있다 해도 그것은 자동차 부품이 단품으로서 가지는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랑을 아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공동체의 가치로 삶의 가치를 재조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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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하나님 안에서 살아오는 동안, 내가 복음을 전하고, 또 그 사람이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전하고 전하고 한다면 최종 유저(User)는 누구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다면 나에게는 어떤 유익이 있고,  복음은 전하기만 하고 결과는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새롭게 묵상해보는 사랑장에서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하는 말씀의 반대편을 보니, 무엇을 가치로 여길 것인지에 대한 새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삶의 안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도 본능처럼 알게 된다. 삶의 한절 한절 안에도 어떻게 보면 처절한 정도의 경륜이 있겠으나, 그것이 무엇이라도 하나님을 전하는 사랑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안식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요, 목적이 없는 삶이고, 끝 없는 의문에 쌓인 삶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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