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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창조의 5일째에 바다의 생물들에게 축북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는 것이 이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고 또한 그것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종용하고 있다는 것이 창조의 과정이라는 이야기인가? 아무리 성경을 개방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공부한다 해도 그럴 수는 없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이 세상의 어떤 문제, 어떤 일도 다 하나님께서 다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에서 아주 중요한 관점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생각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과 마귀가 싸운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마귀가 싸운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과정에서 다섯째 날에 바다의 물고기에 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을 주셨다는 것이 무슨 연관성이 있겠나 싶지만, 이것은 동일 선상의 문제이다.

 

사람들, 특히나 기독교인들, 그리고 그 중에서 일부 종파의 경우 하나님과 마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짓고 각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역사해서 복을 주신 것과 마귀가 간섭해서 해를 당하는 것으로 규정을 짓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는 두 가지 큰 오류가 있다.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인데 하나님께서 관장하지 못하는 세계가 발생한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싸울 만큼 동급의 신과 같은 존재 곧 마귀가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일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지 못하고 마귀가 주관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의 일부를 관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헛점이 있는 분이 아니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소부재의 하나님, 천지를 주관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 틀린 말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마귀가 하나님과 싸운다는 것은 그리고 아직도 그 싸움이 끝나지 않고 세상의 종말이 되어야 그 싸움이 끝나고 최후의 승리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마귀가 적어도 현재까지는 동급의 존재로서 세상을 양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방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급으로 싸우는 존재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유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들은 아주 근본적인 오류가 있는 신앙의 관점이다.

 

 

 

 

 

실재로 욥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마귀를 부리시는 것으로 나오고 있고, 사울왕에게도 하나님께서 악령을 보내셨다고 했으며, 예수님 역시 마귀들과 다투시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말씀 만으로 다스리시는 분이셨고, 또한 어떤 귀신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찬양하기도 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하나님과 싸우는 존재나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도구적 존재일 뿐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마귀나 귀신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이와 같이 잘못되어 있듯이, 세상이 물질 만능주의나 향락으로 관영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 역시 같은 관점에서 봐야 한다. 즉 하나님께서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관대하시거나, 손을 쓸 수 없어서 그렇게 두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노아의 시대에 온 세상을 물로 한번 쓸어버리시고 새롭게 세상을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한번 만드신 이 세상을 다신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시간도 역시 천년이 하루 같은 분이시니, 이 세상의 죄악이 보기 싫어지시면 그날로 당장 이 우주를 새로 만드시면 되는 분이심을 우리가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정말로 그런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이 땅의 죄악이 점점 더해가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무런 대책이 없거나, 기독교인들이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는지를 보고서 그 척도에 따라 세상을 정화시키시는 분 역시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역사 이래로 어떤 시대도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정도로 기독교인들이 잘한 시대는 없었다. 단 한번도 전쟁이 없고, 죄악이 없는 시대가 없었으니까?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창조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이나 마귀가 하나님의 무능함이나 기독교인들의 반응이 부족해서 이 모양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것들도 다 자기들의 세계 안에서 하루하루 창대해지도록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실 그 때 이미 그렇게 해 두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과정이 바로 천지창조 다섯째 날의 비밀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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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되었던 다른 종교가 되었던 대부분의 경우는 어떤 것에 대한 선악을 판단하고 그 중에서 악한 것을 배제하고 삶과 생각에서 떨쳐 내는 것에 신앙적인 활동을 집중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은 그것과는 다른 것을 가르치고 말씀하고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만약에 교회가 동일하게 그런 모델을 신앙의 시스템으로 가져간다면 그것은 다른 종교화의 차별성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이름을 <스스로 있는 자> 즉 존재의 하나님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악한 것을 떨쳐 내기 위하여 기도와 같은 갖가지 행동을 해야 올바른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천지창조를 이야기하다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뚱 맞은 이야기 같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지속적으로 창세기의 천지창조가 물리적인 세상, 현상계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천지창조는 한 사람이 그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창조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말씀이다.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조성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것은 어두움에서 빛을 만나듯 해야하고 또 어떤 것은 갈라지고 버려져야 할 것은 그렇게 되어야 하고, 또 어떤 것은 한 사람이 세상에 속해 살면서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 바로 천지 창조인 것이다.

 

첫째 날에 이야기 했지만, 이 천지라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관이다. 그 사람이 인식하는 세상, 그 사람이 규정하는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가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 하는 것에서 세상이 받아들여지고 자기 만의 세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천지 창조이다. 어떤 이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받게 될 것이고, 어떤 이는 폭파해버리고 싶은 세상일 수 있다. 그런 중에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의미가 열리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알게되고 수용하게 되는 세상이 바로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섯 째 날의 창조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또한 성경에서 바다는 세상에 비유가 된다. 그런데, 그 세상에 사는 물고기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어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 한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세상이 열리는 과정의 하나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서 삶의 승부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고,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닌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세상을 만드실 때 그렇게 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든 종교가 세상적 가치관을 멀리하고 그것을 자기 삶에서 떨쳐 내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향락과 물질 만능주의 같은 사상들을 신앙인이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멀리하고 죄악시 한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복을 주셨다는 것이다. 바닷속에 있는 생명체들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이 바로 그 말씀인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 때문인지, 세상은 날이 갈수록 타락하고 물질 만능주의는 더 왕성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종교인들이 경계하는 향락의 문화는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사진은 hermeth.egloos.com가 뽑은 세계 10대 향락의 도시 1위 태국 파타야 >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복 주시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는 것을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셨다는 것을 어떻게 신앙 안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다섯째 날의 창조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 사람이 이 세상의 철학과 사상이 날이 갈수록 창대해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하여 설명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에 대하여 알게 되어 그 사람 역시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러한 것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 그 사람에게 다섯째 날의 창조과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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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의 다섯째 날에는 바닷속의 생물과 공중을 나는 새들을 창조하셨다. 지금 이 천지창조의 과정은 세상의 현상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하나님께서 설명하시고자 함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자아가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가는(회복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 곧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회복되는 과정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온갖 동물들을 데리고 와서 이름을 짓게 만드시는 장면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어떤 물건을 새롭게 만들게 되면 만든 사람이 그 이름을 부여하는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것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 부여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모양이 아니라 정체성)을 가졌다는 말씀이다.(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이 자신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의 의미가 새롭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자기 안에서 이 세상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재 해석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신이 창조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날부터 지금 다섯째 날 까지 모든 과정이 세상이 현상계적으로 어떻게 창조되었는지에 대한 것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나의 자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는지에 대한 과정이고,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이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수용되는지, 아니 수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과정이 바로 천지창조인 것이다.


그럼 다섯째 날의 창조를 보자. 성경에서는 바다는 세상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힘과 자신이 만든 신을 믿는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 철학이나 과학과 같은 세상의 학문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삶고 살아가는 세계를 말할 때 바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공간적인 세계가 아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공간은 하나님의 세계이고 도심 속은 세상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정체성을 두는 공간을 말한다.


천지창조의 과정에서도 둘째 날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물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이 가진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는 것에는 세상의 것과 하늘의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궁창 아래의 물 곧 바다의 물은 사람이 가진 정체성의 갈증을 푸는 물이 아니라고 했다.

 



<사진 출처 : www.scienceall.com >


그런데, 그 바다에 하나님께서 생명체를 만드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복을 주셔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을 축복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떠나 하나님을 믿기를 바라시면서 왜 세상과 같은 바다에 생명을 만드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생명에 복을 주고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바다의 생명체들을 만드셨고, 또 왜 그들에게 복을 주셨는가?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오늘 나에게 다섯째 날의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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