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 2603

(떠나야 하는 부모, 순종해야 하는 부모)


바울사도의 권면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이것을 읽다가 보면 이 말씀의 주된 대상이 누구인지를 잊기 쉽습니다. 이 말씀들은 에베소서를 시작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자와 그냥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분명히 다릅니다. 방언하는 자나, 기도로 병고치고 돈 받는 자나 신학교 나온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 말씀은 바울사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는 안목과 밝음으로 볼 때 신실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하나님의 예정하심에 속한 사람,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 전에는 영적인 이방인이었으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가진 생명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예수 믿으니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너희 안에 있는 생명이 너희 삶을 이렇게 이끌게 될 것이니 너희 삶이 이렇게 이끄심을 받거든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아니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인생에 대한 행위 규범을 명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 된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방향이 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도록 행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앞서 아내와 남편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는 부모를 떠나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또 공경하라고 합니다. 어릴 땐 공경하다가 결혼할 때는 떠나라는 이야기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보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은 성경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문자대로 지켜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마 싶은 그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있는 것임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어리다는 것은 육신에 관한 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자녀라고 하는 것은 영적 생명에 있어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의미합니다. 이는 당연히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와 같이 영적으로 자신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하여 육신으로 수고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영적으로 상대적인 자녀는 자신에게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인생의 의미를 알게 하신 이에게 순종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시키면 다 자식을 위한 말이니 그냥 순종하라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내를 맞이하기 위하여 부모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이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이때 부모는 자신의 이전 관습, 이전 세계의 가치관을 떠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도 나중에 갈대아우르를 떠남 (창 11:33)) 이로 볼 때 이 부모 또한 육신의 부모를 한정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므로 성경에서 생명과 관련한 모은 것과 계보는 단 하나 그리스도의 생명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어지느냐의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이지 육신의 어떠함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다만 육신의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사람들만 성경 말씀을 행간을 보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보고 육신으로 성경을 지켜내고, 단어 그대로 보려 하는 것입니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마가복음 85 (14:1-8) 향유옥합

Category : 미디어 말씀 파일/마가복음 Date : 2019. 8. 19. 16:55 Writer : 김홍덕

예수님의 장사를 위한 향유옥합의 본질적 의미

향유가 든 옥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예수님의 육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니 하나님 아들이라는 향기가 난다는 말씀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

(에베소서 5:22-33) 사람이 부모를 떠나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베소서 Date : 2019. 8. 18. 10:20 Writer : 김홍덕

우리가 결혼식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씀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라는 말씀의 뒤에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한 것이라고 바울사도가 밝히고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말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아내와 남편에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심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말씀이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대하심과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복종하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부부가 되었을 때 어떤 삶이 되는지를 아울러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단지 결혼생활에 관한 말씀으로만 인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성경을 파편화하여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육신이 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와 같습니다. 아내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결혼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몸 같다는 것도 어려운데 아예 한 몸이 되라는 것은 키메라나 백발마녀가 되어도 될까 말까 한 일인데 모든 결혼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결혼이 주된 주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람 그리고 교회와 하나가 되는지에 관한 말씀인 것입니다.


이는 여기에 나오는 사람이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사람다운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의학적으로 혹은 사회 규범적으로 사람다운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회복된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아내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삶의 형식과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본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기에 이 말씀을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늘 사람을 그리스도 앞의 신부라고 표현함과 같습니다. 즉 그리스도라는 예수님께서 보이신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 곧 하나님의 의가 사람이라는 육신을 가진 인생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삶이라는 하나님 아들을 낳게 되는 것을 말씀하시는 성경의 기본적인 주제 위에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아는 사람, 즉 그리스도의 성품이 삶으로 나타나는 삶은 부부관계든 사회생활이든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즉 범사에 그리스도의 이름(정체성)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교회가 되고 그 교회는 당연히 서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경외하고 나누며 위로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으로 나면 그 본성으로 살게 되는 것과 같이 자연적이고 필연적이며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며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말씀이 육신이 되심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은 한 눈에 이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이 자기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삶으로 나타나는 말 그대로 말씀과 육신이 하나가 된 것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삶이 그렇게 이끄심을 받는다는 것을 보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 생명이 있는 이들에게만 열린 암호 같은 비밀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거저 육신의 결혼생활에 대하여 권면하는 것과 같은 이 말씀, 그리고 이어져 나오는 말씀들도 부모 자식 간의 말씀, 상전과 종의 관계로만 보이는 것 같은 이 말씀이 속심령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생명으로 하나가 되는 것에 관한 말씀이고, 그 말씀이 이루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곧 하나님 나라요 교회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 곧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말씀이기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비밀을 아는 사람,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보내시므로 알게 하신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을 자기 삶으로 삼았더니 그리스도계서 보이신 것과 같은 삶으로 자신의 삶이 이끌려 간다는 것을 알ㄷ게 되는 사람은 교회도 결혼도 가정도 혈연관계도 또 사회생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됩니다. 이는 본성이 이끄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모를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와 같이 분명한 것을 바울사도가 권면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삶으로 하나 되는 존재가 되라는 것과 그 존재가 되었다면 그 존재의 본성대로 살기를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한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라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노력한다면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고, 아직 그리스도의 본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듭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기 육신으로 된 사람이 남편이 되면 영적으로 아직 어린 사람이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는 남자 곧 의를 가진 사람이 되면 그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자기 육신을 내어주심과 같이 사랑함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게 됨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또 그리스도의 본성이 생명이 된 사람이 육신으로 아내가 되면 영적으로 장성한 사람 앞에서 자신이 순종함과 같이 육신으로 남편인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주며 섬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이 되라고 만든 인생들의 손에 죽는 자리에 자신을 내어 주셨는데 그 그리스도의 생명이 자기 본성이 된 사람이 남편과 아내에게 복종하고 자기 몸을 돌보듯 사랑하는 것이 안 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는데 교회가 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끌고 다스리는 것이 하나님의 의 곧 그리스도의 영이시니 그것이 바로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모인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며 그들의 머리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 관한 비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사람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거듭난 상명의 본질이요 정체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보고 이때까지 성경에 말씀하시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다면 자기 자신 안에 아직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었기에 노력했었다는 것을 시인하므로 이 바울사도의 모든 권면이 자기 본성이 되는 사람이, 생명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


👉 궁금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성경은 내 이야기다 오픈 채팅방에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