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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비유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5. 27. 06:58 Writer : 김홍덕

돌밭에 뿌려진 씨

씨 뿌리는 비유 속 4가지 땅 중에 길가와 나머지 땅은 큰 차이가 있다. 좋은 밭은 말할 것도 없고 돌밭이나 가시밭은 모두 씨가 땅에 심기긴 했다. 땅에 심기지도 않고 새가 먹어버린 길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씨가 땅에 심겼단 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심령에 순종 되었단 뜻이다. 씨가 심겨 싹이 나려면 씨에 생명이 있어야 하고, 흙이 씨를 품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돌밭과 같은 사람의 신앙은 예수님께선 말씀을 듣고 기뻐했으나 뿌리가 없는 신앙이라고 설명하셨다. 뿌리는 깊이 박히기까진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뿌리가 없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심령에 굳건히 자리 잡지 못했단 의미고,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을 견디지 못했단 의미다.

 

냉정하게 보면 오늘날 교회와 기독교가 전하고 공유하는 신앙은 사실상 온전하지 않다. 오늘날 기독교는 나름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고 말씀은 들은 사람이 거듭난다고 주장은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로 거듭났단 사람들은 항상 죄를 회개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죄가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자신은 예수님과 다르므로 성경을 지키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생명이 없는 말씀을 전하고 듣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세상엔 이런 말씀만 있는 건 아니다. 생명 없는 말씀을 듣다 생명 있는 말씀을 접하게 되면 정말로 기뻐한다. 이 블로그나 책을 보고 한달음에 달려 온 사람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깊이 뿌리 박히기까지 잘 견디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많지 않다. 어떤 이들은 기쁨에 도취해 모든 것을 맘대로 하는 자유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한풀이하듯 이전 신앙을 비판한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말씀이 추구하는 바는 말씀을 들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싹이 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때까진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생명의 말씀이 이끄는 대로 순종해야 한다. 생명이 있는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은 손바닥 뒤집듯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시진 않는다. 생명은 그 본성이 이끄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오늘날 기독교 신앙의 문제는 말씀에 생명이 없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서 출발했든, 누구에게 책임이 있어 보이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존재가 되느냐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각 개인에게 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이면 알 수 있게 다 전하셨고, 또 그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한다면 어떻게든 만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어김이 없다.

 

그 약속을 좇아 생명의 말씀을 만나면 그 기쁨은 놀라울 정도다. 경험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건 기 순간의 기쁨을 기쁨의 전부로 아는 게 아니다.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가 될 수 있도록 삶이 생명 있는 말씀이 되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다.

 

생명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의 기쁨이 신앙의 모든 게 아님을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특히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건 신앙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한다. 생명의 말씀을 듣고, 그 얼마간의 신선함으로 자신만의 신앙 세계를 구축하고 신앙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면 돌 같은 율법이 심령에 내재하게 되어 더욱 그렇다.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면 너무 기쁘다. 이 블로그를 보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고백했었다. 심지어 한달음에 달려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두가 그 기쁨을 이어간 건 아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순간이동으로 애굽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게 아니듯 생명의 말씀이 싹이 나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어 백배의 열매를 맺기까진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가진 본성이 이끄는 여정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주도적으로 말씀을 전하시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씨 뿌리는 비유로 이 비밀을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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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미련하게 여기는 십자가의 도만 자랑하고 전한다고 했지만 바울 사도도 처음부터 그것만으로 될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세상 지혜가 권하는 말이 아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했고, 그 결과 하나님의 모든 것을 성령이 보이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고전 2:10)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전 2:3)

 

그러나 고린도 교회나 오늘날 교회의 설교는 그렇지 않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로 볼 때 성공한 사람을 인용하여 복음을 전한다. 하나님과 성령의 능력이 세상의 성공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혜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관한 지혜다. 따라서 이런 설교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모두 세상 지혜가 권하는 말로 복음을 전하고 듣는 사람이다.

 

이같이 세상 지혜가 권하는 설교를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은 십자가의 도와 반대로 가는 사람이다. 십자가는 어느 모로 보나 세상에서 실패한 자리다. 그것도 가장 실패한 자리다.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전하는데 이기고 높이 올라가는 법의 세상 지혜, 사람의 지혜를 인용하고 의지한다는 건 모든 게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 있는 지혜와 여러 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 있는 일이다. 따라서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의를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만 전하면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세상의 지혜,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과 그의 일들을 성령과 성경의 증거로 설교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전하는 이들에게 성령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설교를 듣는다. 또 많은 설교들이 있어 자연스레 비교도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설교는 화려해졌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움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아름답고 화려한 말로 설교를 준비한다. 그러나 이들이 망각한 게 있다. 설교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란 거다.

 

예수님의 말씀은 공부할 이유가 없다. 성령만 오시면 모두 알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성령이 오시면 모든 걸 알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달리 성경을 공부하는 신학을 만들고, 성경 말씀 성취를 증명하기 위해 세상의 일을 인용한다는 건 모순이다. 바보 거나 사기꾼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2장 중반 이후 성령의 능력이자 정체성을 전한다. 그 핵심은 성령은 모든 것을 통달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엔 성령의 능력을 본질적으로 언급한다. 주목할 것은 성령의 능력은 곧 기적이란 일반적 인식과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바울 사도의 관점은 고린도전서 전반에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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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비유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5. 21. 05:58 Writer : 김홍덕

씨뿌리는 비유의 배경

사람 안에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 되면 비유든 아니면 직설적인 화법이든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이해된다. 말씀하시는 이와 같은 본성, 같은 뜻, 같은 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거듭난다는 건 바로 그런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이 사람이 바로 예수님께서 굳이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아도 되는 사람, 곧 그리스도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이므로 그리스도로 나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알아듣고 살게 된다. 무엇보다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생명은 그런 존재다. 따라서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거듭났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신학이란 학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사람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려면 그리스도가 될 수 있는 인자가 사람 안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씨앗, 곧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심겨야 한다. 씨 뿌리는 비유는 이 법 안에 있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선 사람을 향해 항상 말씀하고 계신다. 항상 씨를 뿌리신단 뜻이다. 이 말씀이 사람 안에 심기는 건 사람에게 달렸다. 사람이 순종하느냐 아니냐에 달렸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신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온전함을 순종하고 마음에 두는 게 듣는 거다. 이게 믿음이다. 순종하면 말씀이 심령에 심긴다. 믿음으로 심긴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생명이 되게 하신다. 이런 상태가 되지 않는 게 성령 훼방이다. 무엇보다 말씀이 생명이 된 그리스도가 되는 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고, 인생의 존재 목적이다.

 

씨 뿌리는 비유 속 땅은 흙으로 창조된 사람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심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흙으로 지은 사람에게서 이루어지는 건 창조의 최종목적이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유일한 계획이고 뜻이다.

 

씨 뿌리는 비유 속 땅은 돌밭, 가시밭, 길 가, 그리고 좋은 땅 이렇게 4가지인데 누구나 알 듯 사람의 마음 상태를 비유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모습을 4가지의 땅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길 가, 돌밭, 가시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좋은 땅은 뿌려진 씨가 풍성한 열매가 되는 땅이다. 씨 뿌리는 이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다. 사과를 기대하고 사과를 심은 농부에게 좋은 사과를 내어놓는 땅이 순종하는 땅이듯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게 순종하는 사람이고 좋은 땅이다. 한 가지 착각하면 안 되는 건 하나님의 뜻이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거지 사람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생각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땅은 땅에서 자란 생명을 따라 땅의 이름, 곧 정체성이 바뀐다. 사과를 심으면 사과밭이 되고, 복숭아를 심으면 복숭아밭이 되는 게 땅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심령에 심긴 말씀이 성령으로 인하여 생명이 되는 게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법이다.

 

길 가와 같은 사람

이제 4가지 땅을 이야기해 보면, 길 가는 뿌려진 씨를 새가 와서 먹어버리듯 사탄에게 말씀을 뺏기는 사람이고, 돌밭은 뿌려진 씨가 돌 곧 자신의 의가 크고 많아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니 금방 시들어 버리는 이며, 가시밭은 가시와 같은 세상의 근심이 많아 말씀이 생명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

 

길 가는 엄밀히 말하면 씨가 심기지도 않은 땅이다. 새가 와서 먹을 정도면 씨와 땅이 하나가 된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령에 심기지도 않은 사람에 대한 말씀이다. 말씀을 인생을 사는 하나의 옵션으로 여기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4가지 땅 중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아마 많은 기독교인은 길 가에 속한 사람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심기지는 않았으나 씨는 뿌려졌다. 말씀은 들었다는 의미다. 말씀은 들었는데 심령에 심기지 않은 사람, 이게 바로 오늘날 기독교인의 모습이다. 말씀이 심긴다는 건 심령에 순종했단 뜻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않다.

 

말씀이 심기면 그 말씀이 씨가 땅에서 썩듯 갈등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갈등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낮은 곳으로 끌고 가는데 사람은 높은 곳을 추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이런 갈등은 없다. 왜냐하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여 세상 높은 곳으로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낮은 데로 가려는 본성을 가진 씨가 높은 데를 앙망하는 땅을 만나 그 속에 들어갈 수는 없다. 씨가 뿌려졌지만 심기지도 않았단 건 교회에 다니면서 설교를 들었지만 한 번도 심령에 심겨 자신이 원하는 바와 다른 길로 인도한다는 것을 느껴보지도 못한 오늘날 대부분의 신앙인이 여기 해당한다.

 

많은 신앙인에게 신앙은 옵션이다. 삶이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갖추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긴다.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세상에서 도덕적인 사람으로 살기 위해 가져야 할 덕목 정도로 여긴다. 사람의 이런 생각은 하나님께 착한 사람으로 살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하고, 그 보답으로 복된 삶, 성공한 삶을 주실 것이라 믿는 신앙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평안하게 사는 삶을 도울 도구로 가지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게 신앙인들의 소망과 기도다. 이런 소망과 신앙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길과 반대다.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씨가 심어질 수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자신이 씨 뿌리는 비유 속 길 가에 속한다고 생각하진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이 낮고 낮은 십자가로 자신을 인도하는 게 신앙적 관용구 정도일 뿐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신을 세상에서 성공하고 평안하게 이끌어 주시길 기도하고 있다면 명백히 예수님의 비유 속 길 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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