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31장)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다시 쳐들어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아주 대패했다. 무엇보다 블레셋과 맞서기 위해 세운 왕 사울이 이 전쟁에서 패하고 오히려 전사한다. 사울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기고 사울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된 블레셋은 사울의 목을 베고 그 갑을 블레셋 각 지경에 보내어 전시했다. 사울로서는 정말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사울의 시대와 사무엘상은 끝난다.
우리는 다윗과 사울을 우리 심령의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으로 조명해 왔다.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의 행적 전반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합당하게 행하는 다윗의 여러 모습은 오늘 우리 신앙의 좋은 본보기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록하여 수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전하신 이유는 다윗의 행동을 본받고 따라하기를 바라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다윗의 심령이 오늘 나의 심령, 더 나아가 본성이 되기를 바라심이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다. 그리스도의 유전자와 다윗의 본성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조상과 후손은 행위로 연결된 관계가 아니다. 생명의 유전자와 본성이 연결된 관계다. 즉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다윗을 그렇게 행하게 한 본성을 가지기 원하셨기에 오늘 우리에게 사무엘상 말씀을 전하신 것이다. 행동을 따라하라는 게 아니라 그렇게 행동한 본성을 가진 생명이 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말씀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윗의 일을 전하신 것은 행동을 본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과 같은 본성을 가지기 바라심이다.
다시 한번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는 유전적인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강조한다. 행동이나 습관이 아니라 생명의 본성으로 연결된 관계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다윗이 보여준 순종과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행위가 아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상에 나오는 다윗의 순종과 믿음의 모습은 행동을 주목할 게 아니라 그 행동을 자아내는 본성, 곧 그리스도의 본성이라는 걸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옛사람에서 새사람으로 바뀌는 <거듭남>의 과정을 거친다. 다윗이 보여준 모습은 거듭난 생명의 본성에서 비롯된 행동과 삶이라는 것이며, 순종과 믿음은 거듭난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본성이 나타난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사람들은 그냥 다윗의 행동을 본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건 나타난 것일 뿐 본질이 아니므로 그걸 따라하는 건 시늉에 불과하다. 노력하다가도 실패하는 게 시늉 혹은 노릇이라는 증거다.
본성에서 나오는 행동과 삶을 노력과 신념으로 따라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계에 부딪힌 실패, 만 가지를 지키다 실패하는 한 가지가 그리스도의 본성으로 거듭난 게 아니라 행동을 따라하는 노릇하는 사람이라는 걸 드러낸다. 아직 옛사람의 지배, 사울처럼 자기 의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다. 그나마 그 의로움이 그리스도를 모방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매번 실패하고 회개하고 다시 시도하다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면서 그게 신앙생활이라고 정신 승리를 추구하지만 그건 엄연히 율법 아래 있는 것이다.
사울의 죽음은 그렇게 본성이 아니라 행위로 성경을 지켜내고, 다윗의 삶을 행동으로 따라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삶의 결과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바로 블레셋, 그러니까 이방 곧 세상에게 패배하고 영혼이 죽는 것이다. 세상에 져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을 행동으로 지키려고 새벽에 기도하고, 깨어 있다는 말로 대변되는 경건하고 조심하며 말도 선하게 하려는 노력은 결국 실패한다는 걸 설명한다.
사울은 머리가 잘리고 그 갑옷이 이방의 노리개가 되었는데, 이건 하나님 말씀과 선진들의 삶을 행동으로 따라하는 정신은 육신의 삶과 분리된다는 것이고, 갑옷처럼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던 신앙의 경건을 추구하는 행동들은 결국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 예수 믿는다고, 교회에 다닌다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다 실패해서 개독교인이라고 세상의 비아냥을 받는 게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이것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던 옛사람이라면 오히려 은혜가 된다. 그런 나의 신앙, 나의 옛사람이 죽임을 당하므로 나의 삶이라는 세계는 다윗이라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바른 믿음을 가진 새로운 왕의 지배를 받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조상, 그리스도의 본성이 나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새사람이다. 사울 왕의 모습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라면 사울 왕, 내 심령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건 새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새 시대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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