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1-3) 예수를 바라보자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히브리서 Date : 2020. 4. 20. 09:21 Writer : 김홍덕


믿음장으로 유명한 히브리서 11장은 독립된, 그러니까 믿음에 대하여 특별히 설명하기 위하여 기록된 내용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사가 온전한 제사이며, 그 제사는 단번에 드려진 제사이므로 그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자는 설명의 일환으로 권면하는 글이다. 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으로 인하여 온전한 구원이 있음에 대하여 확신을 권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했다고 믿는다면서 정작 자신을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이 히브리서가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속이 온전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구속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은 율법과 레위 계통의 제사를 따라 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을 좇고 있다는 것은 성경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중의 하나가 오늘날 신앙들의 신앙이 율법적인 신앙이라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간과하고 착각하는 것은 자신들이 지키려는 말씀은 신약에 있고 예수님과 사도들의 말씀이기 때문에 율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고정 관념은 참으로 깨기 어렵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이날까지 하나님을 믿어 온 모든 여정을 부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창세기의 시작이고 구원의 시작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구속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성경말씀을 행동으로 생활로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고 의롭게 여긴다는 생각으로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좀 솔직해지면 자신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얻기 위함이었다는 것까지 인정하게 될 것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사실이니까.


그런 신앙 안에서 있으면 평생을 예수 믿어도 예수님의 구속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자신을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율법 아래 있기 때문이다. 행위로 구약이든, 신약의 예수님 말씀이든 지켜서 의로워지려는 생각이 율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을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한다. 행위로 의로워지려 한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늘 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행위가 의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위가 심판을 받아 죄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죄를 정한다고 믿고 있다는 증거다. 그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11장에서 많은 증인들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그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정한 뜻이 있다는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은 분이고, 피조물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선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그들의 삶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랬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인 그리스도를 소망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런 이유로 히브리서를 읽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권면한다. 예수님을 보자고, 보라고 말할 때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어떤 유익이 있기 때문에 보자고 하는 것이다. 본다고 달라질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보자고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이것은 눈으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예수님과 같아 지기를 소망하자는 의미다. 예수님과 같은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을 소망하자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앞서 설명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소망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소망하는 것은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육신을 가진 인생에게 임하여 그것이 육신의 삶을 주관하는 것이 믿음의 소망이다.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하나님의 의가 사람의 육신으로, 육신의 삶으로 나타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사람은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거듭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목적이자 사람을 향한 약속이고 계이며 본질이고 하늘의 참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하늘의 참 것을 믿었기에 그들의 삶이 믿음의 조상다운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타난 것은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다.


그러므로 정말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한다면 예수를 바라보아야 한다. 즉 예수님께서 보이신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의무 같지만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거듭난 삶이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죄가 될 리가 없다. 따라서 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보고 믿는다면 자신이 죄 없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구원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드린 구속이 뜻한 존재가 되지 않았는데 세례증서나 교인 확인서로 구원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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