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시대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이 있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기준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모습이나 신분이나 행적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인데, 고대 시절 머리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왕과 신께 계시를 받는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에게만 있는 임명 의식이었다. 고로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기름은 재산이기도 했고, 또한 당시에는 기름이 치료재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상처난 곳에 기름을 바른다는 표현이 성경에도 많이 나온다. 그러므로 기름은 육신에게 있어 가난과 병든 것에서 구하는 것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머리에 기름을 부을 때 감람나무 열매의 기름을 머리에 부었다. <사진출처 : segibak.or.kr>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적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세가지 이름이 있는데, 하나는 예수, 그리고 그리스도 또 끝으로 임마누엘이 있다.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이고,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기능과 정체성과 상태를 각각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인데, 지금 이 시대의 말로 바꾸면 영웅(Hero)이 될 것이다. 즉 사람이 벗어나고 싶은 괴로운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 많은 영화들이 영웅을 그리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영웅들은 대부분, 그 추구하는 바가 다르기도 하지만, 한 가지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나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관련 포스트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첫째 날 - 빛이 있으라(2)



아무나 되기 어려운 영웅은 결국은 나를 위한 영웅이 아니다. 우선 내가 처한 곳에서 구원해 줄 수는 있어도, 늘 내 곁에 있는다는 것도 아니고, 스파이더맨 처럼 내가 어려울 때 마다 불러야 하는데, 그때 마다 온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결국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는 한, 영웅은 한시적인 것이다. 마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 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누구나 될 수 있는 정체성이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자신을 죄에서 그리고 삶의 곤고함에서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다. 그것도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재이이신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그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성경 전부가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성경의 시작, 아니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시작, 그 하나님의 세상의 시작이 되는 창세기의 천지창조 역시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기만 하면 누구나 다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살 수 있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지으셨다는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지으신 이의 목적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시게 되는 그 성품을 성경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