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창조 과정 속에서 3일째에 창조하신 식물들은 자연의 산과 들 그리고 사람이 경작하는 논과 밭에 나는 식물에 관한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그림자이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표현되는지와 또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상관성을 알게 해 주시는 것이다.


사람이 자신과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알지 못하여 땅(사람)이 혼도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는 시작은 빛을 만나서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이 세상이 보이는 것이 본질이 아님을 알게되고, 그러한 깨달음 자신으로 하여금 어떤 말씀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사람이 먹어야 하는 것, 먹을 수 있는 것은 궁창 위의 물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세상의 지식과 학문과 쾌락에 속한 것이나 예의나 고상함에 관한 것으로 사람을 정의하거나 그 정체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것에서 떠나게 되는데 이것을 종교적인 의식으로는 세례로 표현되고, 그리고 천지창조 과정에서는 땅이 바다에서 드러나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창조의 과정이 땅에 것에 집중이 된다. 땅이 무엇을 내며, 이 땅을 비추는 광명은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이 땅에는 어떤 동물들이 있으며, 그리고 이 땅은 결국 무엇이 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그 결국은 <사람>이 창조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은 결국 세상의 것으로는 자기 정체성을 삼을 수 없는 땅이 하나님의 생기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는 것이 창조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오자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의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이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식하시는 존재를 성경은 <그리스도>라고 하신다. 고로 이 창조의 과정은 한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어디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을 것인지의 과정을 지나 하나님이 안식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고 삶이 되는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 바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무엇을 어디에 둔다는 것은 두는 것과 장소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모든 것이 그렇다.


이 과정 안에서 네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것이다. 이 광명은 하나님께서 다 궁창 위에 두셨다. 무엇을 어디에 둔다는 것은 그것과 그 있는 위치가 합당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비슷하게 보여도 행주는 주방에 두고 걸레는 화장실에 둔다. 걸레는 화장실과 격과 정체성이 일치하고 행주는 주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해와 달과 별을 궁창 위에 두셨다는 것은, 궁창 위의 물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태양과 지구의 위성인 달과 우주에 있는 수많은 행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에 말씀하신 그 빛,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인식하게 하는 빛을 주관하는 광명들이라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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