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사람을 만드시다 (1)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3. 11. 4. 09:32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셨다. 세상에 좋고 강하거나 아름다운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필이면 흙으로 만드셨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하나님 자신을 표현할 존재를 만드시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괜히 문제를 도입하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는 것인 아닌가 싶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늘 강해지고 위대해지고 아름다워지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표현할 존재를 만드심에 있어 강한 재질이나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시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해 보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망각하면서 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망각하면 안 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망각한다는 것은 바로 <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을 만드신 원재료인 흙이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식물은 다 여기서 난다. 단 하나의 씨로 인하여 이 흙이 생명이 되는 것이다. 나무와 채소의 모든 것은 다 흙으로 부터 온 것이다. 그리고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이 흙이 바로 사람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육신의 정체성이 흙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천지창조의 과정에서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사람의 정체성에 대한 말씀인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냐?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또 왜 창조되었는가? 하는 모든 것이 이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천지창조의 과정은 지구나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결국 천지창조라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라고 했고, 하나님의 세계를 인식하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세계로 인식하며 사는 사람을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천지창조는 결국 사람을 만드심으로 종결된다. 그것은 이 천지창조의 목적이 사람을 만드시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태초라는 것이 한 사람에게 어떤 세계가 열리는 것이라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어떤 세계가 열리는 것이나, 한 사람이 하나님이 안식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나, 둘 다 사람이 목적이고 주체라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본질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엇을 만들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나타내기 위함인 것이다. 휴대폰은 누가 만들어도 자기 상표를 꼭 붙인다. 자기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삼성이 자기가 만든 스마트폰에 사과 모양을 그리지는 않는다. 심지어 아이폰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 조차 잘 만들지 않는다. 자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이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우리의 형상대로>라고 하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는 앞에서 아주 길게 포스팅을 했다. 이것은 물리적인 형체가 아니라 <이미지>고 내용이라는 것을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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