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십계명 중에서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계명을 꼽으라면 아마 이 3계명을 이야기할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 전제는 계명을 몸으로 지켜내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한 것이지만. 신념을 가지고 몸을 다스려 계명을 지키는 것을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자기 입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혹은 불경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정하게 부르거나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십계명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사람이 신에 대하여 가진 기본적인 경외함과 두려움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부르는 일에나 호칭을 부여함에 있어 욕을 하는 것과 같은 일이나 부정한 표현을 하지 않으면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별 무리가 없어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는 계명이라는 것은 몸으로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계명은 몸으로 시행되고 나타나고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자기 안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에 맞는 행동은 의지나 신념이나 노력 없이도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아버지이시니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자기 안에 갈등을 하고, 안 되니 신념을 가지고 노력해서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본성대로 하는 생각과 행동 그것이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명과 성경 말씀을 지키는 일에 있어 노력을 합니다. 노력한다는 것은 그 시작하는 지점은 지키지 못하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수고와 공로와 신념을 동원해서 그 자리로 억지로 자신을 데려가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본성으로 인한 것은 그와는 반대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생명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계명이나 말씀을 지킨다는 것도 바로 그런 세계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서 이 십계명을 보아야합니다.




<이름>이란 어떤 것인가?



제 3계명의 핵심은 <이름>입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정체성입니다. ‘사람(Man)’이라는 이름은 모든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이름입니다. ‘사자(Lion)’ 역시 우리가 사자로 인식하는 동물 전체를 의미하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정체성입니다. 영어에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하여 정관사 the라는 것이 있습니다. the가 생명체 앞에 붙으면 그것은 그 종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이름은 정체성입니다.


이름이 정체성이라는 것은 성경 전반에 나옵니다. 천하에 예수님 외에는 구원 받을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정체성이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뇌까린다고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 곧 예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십계명의 제 3계명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체성과 다르게 하나님을 대하거나 부르지 말고 기대하지 말며 그런 신으로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3계명의 핵심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입니다.


사람이 누구를 믿고 부를 때는 그 상대의 정체성에 맞게 부르고 대합니다. 언어적으로도 상대가 무엇, 혹은 성별이 무엇이냐에 따라 호칭이 다릅니다. 정체성에 따라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틀(문법)을 깨면 가끔 강조가 될 수는 있지만 보통은 틀립니다. 왜 틀리는가 하면 그것은 이름을 망령되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에게 ‘She’나 ‘그녀’라고 부르면 그것은 상대를 희롱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지 부르지 말라고 하니, ‘거지 하나님’ 이나 ‘하나님은 무능하다.’는 식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지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정체성에 맞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너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아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체성



그렇다면 하나님의 정체성이 어떤 것이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기에 사람들에게 이런 계명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유와 공로를 의로 여기시는 신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소유의 드림과 공로로서 사람의 의로움을 판단하는 것은 이방의 잡신들의 정체성인데 하나님을 그런 잡신들과 같이 취급하니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하나님을 존재의 하나님이 아니라 소유와 공로를 의로 여기시는 신으로 대하는 것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고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소유와 공로를 의로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어떤 것을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 앞에 어떤 행동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고 대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도(행위-예수님께서도 바리새인들이 기도하는 행위를 외식이라 하심)를 많이 하면 신앙이 좋다고 하고 또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하는 것이 공로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여김입니다.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리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부자로 살게 해 주신다고 믿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님은 사람이 소유를 드리는 것을 의로 여기신다고 믿는 신앙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런 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체성이 그렇다고 여기고 대하고 믿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밝히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사람에게 늘 하시는 질문은 “네가 누구냐?”입니다. 범죄 한 아담에게 “네가 어디(정체성의 자리)에 있느냐?”고 물으셨고, 예수님께도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고 무슨 공로를 드리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로 여기느냐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온전히 정립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정립되고 정체성이 정해지면 행동은 그에 따라 자연적으로 정해지고 그것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계명은 다 지켜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소유와 공로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이 사람에서 하나님께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영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되는 방향을 가진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존재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사람과 하나님이 어떤 존재로서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가 하나님이 의로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왜 만드셨는가 하면 하나님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사람으로 나타나는 관계로서 사람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가시진 분입니다. 이것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나님이 요구하시기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인 나의 존재 이유와 삶의 목적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신앙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태초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정해지면 사람이 하나님께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무엇은 무엇을 드리고 어떤 공로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표현되도록 하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방향이 사람에서 하나님으로 무엇을 드리고 그것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고 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바로 알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방향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존재의 목적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지신 사람의 존재 정체성은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존재 곧 하나님의 내용이고 사람의 육신과 삶은 그 형식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성전이고 우리 삶을 산제사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비밀이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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