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래 책 "질그릇의 선택"을 연재하는 글입니다.



질그릇의 선택
국내도서
저자 : 김홍덕
출판 : 바른북스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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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곧 The Man(사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벗어난 안목으로 육신을 보게 되었다. 그 관점 속 육신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육신으로 설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담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는 것이 바로그 의미다. 하나님 앞에 육신을 감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은이 육신은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한 것이고, 이 육신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면 죽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선악과를 먹기 전과 육신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육신을 부끄럽다고 여긴 아담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가렸다. 그리고 숨었다. 하와가 부끄러워 몸을 가린 것이 아니다. 선악과 이전에도 둘이 같이 벌거벗고 있었고, 이후에 둘사이에 아들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볼 때 벗은 것이 부끄러운 관계 라고 할 수 없다. 벗은 것이 서로에게 부끄러워 육신을 가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가렸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육신을 하나님께 숨기려는 어리석음을 오히려 마땅히 할 바로 여겼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어리석다고 하시는 뿌리가 여기 있다.


감추고자 한 것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육신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못하다는 것을 감추려 한 것


그렇다면 왜 무화과 나뭇잎인가? 몸을 가릴 목적이라면 잎이더 큰 것들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손바닥만 한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을까? (성경이 이런 비상식적인 것을 서술했을 때는 그 표현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죽자는 이야 기가 아니듯이) 그것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신체를 가리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추고 싶은 것은 육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무화과로 상징되는 것이면 하나님 앞에 부끄 러운 것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무화과로 가렸다고 하시는 이유가 있다. 무화과는 육신으로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다고 믿는 유대인들의 나라목(木)이다. 무화과로 부끄러움을 가렸다는 것은 성경이나 율법을 지키면 육신의 안목으로 볼 때 보이는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을 지키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질 것이라 생각하고 성경을 행위로 지키려 노력하면 사람이라는 연약함과 육신의 부정함을 감출 수 있다고 믿는 신앙을 두고 무화과로 부끄 러움을 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화과 나뭇잎은 성경을 지키면 하나님 앞에 의로워진다는 생각에 성경을 행위로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신앙 그 자체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육신의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성경대로 살아야 복을 받고 화는 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성경을 지키려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 복을 받을 수 없고, 화를 당하는 의롭지 못한 삶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상태에서 육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아직 선악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죄와 사망의 상태에서 살고 있는 증거다.


성경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성경대로 살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다. 거듭났다고 하는 말씀, 생명이라는 말이 성경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앞으로 계속 반복적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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