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고데모라는 유대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생뚱맞게도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신다. 언뜻 생각하면 동문서답과 같은 답변이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개의치 않고 다시 질문을 한다.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와야 한다는 말입니까?”라고. 이것은 참 바보스러운 질문처럼 보이고, 실제로 어떤 설교자들은 이 니고데모의 질문을 우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 대화의 내용을 알면 니고데모의 질문은 우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을 우문으로 보는 이들은 이 대화의 본질을 모르는 바보들일 가능성이 높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처음 말한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니고데모가 이야기하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기성교회나 당시의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이라고 하면 바다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초인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기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적 중에 기적은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관원 곧 공무원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답하셨다.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말한 기적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나 있음직한 일들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니고데모가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이 보이시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물은 것이다. 그런데 이 니고데모의 의문을 우문이라고, 바보 같은 소리라고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기적을 니고데모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기적이라는 것이 사람이 육신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니고데모의 질문도 우문이고, 예수님의 답도 동문서답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기적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모르는 것에 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모른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일이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보이시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데 어떻게 육신을 가진 사람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일이 나타나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와서 그것을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의문이 가득한 니고데모는 그 거듭남이 궁금해서 어떻게 해야 거듭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예수님 당신과 같이 사람이 육신으로 살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지 그것이 궁금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궁금할까? 이것이 궁금하려면 예수님의 일이 이 땅에 육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하나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를 물을 수 있겠는가?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것을 육신이 거듭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람이 나이 들어서 어떻게 모태에 다시 들어 갈 수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육신의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신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6-7)


이는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의 나라와 같이 영토를 가지고 사람들을 모은 다음에 하나님께서 내려오시거나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하지만 제자들조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알았다.)


지금은 어쩌면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생각하는 신앙인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영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나라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아니다. 어떤 안목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의 나라와 같이 생각하는 안목, 거듭남을 육신의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라고 보게 하는 안목이 있다는 것이다. 그 안목은 지금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그 안목으로 보면 앞에서 말했듯이 이 니고데모의 질문은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물이 포도주가 되었듯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그러니까 육신이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삶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게 하는 사람 안에 생명이 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은 거듭남과 어떤 관계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도록 잉태케 하시는 일이 바로 성령의 일이시기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령의 가장 놀라운 능력이자 일으키시는 가장 큰 기적은 바로 사람이 변하는 것,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 그것이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성경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정자 대신에 성령이 난자와 하나 되어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또 사람에게 들린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게 하는 일은 오직 성령으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령의 역사로서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명이 되고, 사람의 삶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과 성품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본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한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삶으로 표현되는 사람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삶이 보여주는 삶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그 말씀이 물이 포도주가 되듯이 다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삶이 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은 바로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이심을 안다는 것은 빛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한낮과 같은 밝은 때라고 요한 사도가 말씀하신 것이다. 니고데모는 적어도 예수님을 찾아 올 때에는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일(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알았기에 찾아 왔지만)을 행하는지를 몰랐기에 그는 밤에 찾아왔다고 요한 사도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니고데모와 같다. 예수님이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주이신 것을 믿는다. 그러나 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이신지는 모른다. 버스 차비를 대시니 내어 주듯, 아니면 죄는 아들이 짓고 매는 종이 맞듯이 대신 십자가를 져서 구주이신가? 그런 가치관은 언제나 예수님이 자기 밖에 계시다. 안에서 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문제를 겪으면 태권브이처럼 나타나서 도우시는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으로 그들 밖에 계시는 것이고, 그런 가치관이 말하는 기적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보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보지도 못하고,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교회를 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다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빛을 알지 못하는 어두움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지 않고 육신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는 기적은 오직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져서 그 말씀이 성령으로 생명이 되는 거듭남으로 인함 그 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심으로 사람들이 예수님과 그 십자가를 볼 때 사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졌고,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심과 같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사람의 정체성이 사람 안에서 생명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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