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얻는 야곱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6. 1. 26. 11:43 Writer : 김홍덕

야곱은 두 아내를 얻어서 아들들을 얻는다. 레아가 아들들을 낳자 이것을 시기한 동생 라헬이 자기 종을 남편 야곱에게 주어 아들을 얻고, 이것을 본 레아 역시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주어 또 아들을 얻고,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시므로 라헬이 요셉과 베냐민을 얻어서 12명의 아들과 디나라는 딸을 얻는다. 그리고 그 아들들과 후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형성된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민족인 유대인만 하나님의 민족이라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들이 아직 그 착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선민의식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성경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과 그 의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그들의 성전과 율법과 관습을 통해서 보이셨다. 즉 하나님의 의가 표현되는 삶이라는 어떤 삶인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이신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은 아닌데, 이것을 모른다. 이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바울 사도가 그렇게 노력했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할례나 율법과 같은 이스라엘의 모든 관습과 규례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생명인 사람이 사는 삶을 표현한 것이다. 마치 심청이가 바다에 뛰어 들어 그 효를 표현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습이라는 모양이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그 외형과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표현된 것이기에 이 땅위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신 의가 자기 생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나라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의(헌법)의 다스림 안에 있는 사람이고, 그것을 자신의 국가관과 삶의 방식과 의로 삼는 사람이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삶의 의가 된 사람들이 모인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그렇게 하나님의 의가 자기 삶의 의가 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어딘가? 그곳이 바로 교회다.


비유컨대 이것은 영토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미국에 가 있어도 대한민국의 법 그 아래 있다. 그와 같이 사람이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살아도 그 삶의 의가 하나님의 의에 있다면 그 사람은 육신이 이 땅에 산다고 해도 이미 천국의 사람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살지 않았던 사람,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몰랐던 사람은 천 번을 죽어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야곱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씀하시고자 한다. 그 시간의 역사는 수천 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봐도 그것은 하나님께 긴 시간은 아니다.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분이시기 때문이다. 즉 이 야곱의 이야기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그것을 보고 듣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야곱이 아들들을 얻음으로 그 아들들이 지파가 되고, 그 지파들이 번성하여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표현된 이삭과 또 그 이삭의 아들인 야곱이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사람의 육신, 곧 삶으로 표현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는 시작이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야곱이 아들을 얻었다는 것은 한 사람 안에 있던 하나님의 의가 여러 삶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삶의 모양은 달라도 하나님의 의는 하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의가 일률적인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들이 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도 여러 가지고 귤도 여러 가지며 소도 양도 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라고 할 수 있는 교회가 규격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즉 신앙이라는 것은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라고 하셨고, 그래서 금이나 은을 쳐서 모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쳐서 모양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을 자기 의지대로 규격화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이다.


즉 ‘교회에 다니려면 사람은 이래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그것도 틀린 것이고, 봉사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법이 아니라 우상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그 아비조차 의도한 것을 반영할 수 없는 것이 생명인데, 하물며 자기 나라와 자기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의 구성원을 어떻게 몇몇 사람이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도 그 성격과 행실이 다양했다. 아버지가 같지만 다 달랐다. 또한 네 명의 어머니에게서 나왔다. 즉 하나님의 의가 여러 형식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4”라는 숫자가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면에서 보면 네 명의 아내요 어머니는 사람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사람이 가진 그 다양한 성품과 모양과 삶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의가 표현되는 것이며, 그렇게 다양하게 표현되는 모든 의가 다 한 나라로 있게 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요, 이 땅위의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라 할 수 있는 교회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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