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삶, 어느 것이 먼저인가?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13. 11. 12. 23:34 Writer : 김홍덕

교회의 청년에게 일자리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평일은 잔업이 있지만, 수요일은 잔업이 없고, 근로기준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달력 공휴일은 다 쉬고 토요일도 쉬는 주 5일제 나름 근로조건이 좋은 자리였고, 이전에 나의 팀원이었던 녀석이 과정으로 있어서 좀 부탁을 했었는데 이력서 달라고 연락이 와서 당사자에게 연락을 했다.


근데, 이 청년의 반응이 평일 구역 예배에 가기 힘들고, 어쩌고 하면서 다시 연락 주겠다더니,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그 자리를 고사를 한다. 거리가 약간 멀긴 하지만 유류대도 반 정도는 지원해 주는 회사인데 아쉬웠다. 그 청년에겐 좋은 자리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물론 지금 이 청년에 대한 설명이 전부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에게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내가 평소에 본 모습이 그런 것과 거리가 있어 보일지언정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으로 받는 것이 도리이다. 내가 사람 마음 알수는 없으니 말로 듣고 그것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이것을 이렇게 단순하게 받기까지 내 마음에 아무 경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신앙 생활에 다소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 좀 꺼려하는 모습에 여운이 남는다. 과연 신앙생활을 위하여 삶의 현실을 물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말이다. 나도 예전에 좀 심각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었기 때문이다. 신앙을 율법적으로 알 때도 그러했고, 성경이 존재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씩 알게 된 것에 따르면, 삶의 모든 현실적은 문제들은 분명히 신앙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단언코 방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니까 삶의 모양을 바꾼다고 신앙이 바뀌지는 않는다. 신앙이 바뀌면 삶의 모양은 바뀐다. 다시 말해서 기도를 열심히 하면 신앙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신앙이 자라면 기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신앙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신앙이 자라면 기도를 하게 된다

개가 짖는 것이지, '멍멍'소리를 내서 개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신앙은 삶이다. 삶이 참 구질하고 추악한 면 또한 많지만 이 인간의 삶의 모습은 도화지와 같은 것이다. 이런 배경이 없으면 신앙이란 것이 구분될 수도 없고, 어떤 것이 좋은 신앙인지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앙은 삶으로 표현되고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생명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은 생명의 법에 의거한다. 다시말해서 유전 인자가 표현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개가 짖는 것이지, '멍멍'소리를 내서 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삶의 모든 것을 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로 채울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본성은 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직장을 구하거나 삶의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할 때, 때로 우리는 신앙생활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떨때는 손해를 감수하고 그런 제약을 떨치기도 한다.(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어떤 시절에는 신앙적인 것을 지키기 위하여 삶의 조건을 후위로 두는 것, 그것이 정당할 때가 있다. 그러나 결국은 신앙이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그 때는 그런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고, 또한 그런 갈등 속에 다양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삶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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