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신앙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교회 Date : 2016. 2. 20. 08:10 Writer : 김홍덕

‘너희는 돈 있냐? 나는 예수 있다!’ 세상일이 맘대로 되지 않았던 한 시절 세상을 향해서 가졌던 마음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한 단면이다. 나도 그렇게 배웠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라고 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생활 전반에 있어 돈과 같은 세상의 것 대신에 신앙을 선택하는 것을 어떻게 보면 의무로, 어떻게 보면 자랑으로 여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해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신다고 믿는 것이 큰 요소이다. 문제는 그 복이 예수님을, 신앙을 선택하느라 선택하지 않았던 세상에서의 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안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하지만 더 치명적인 오류는 그것이 아니다. 더 어두운 부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세상의 부귀영화 대신에 선택했다고 하는 그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과 하나님을 믿는 것은 vs. 혹은 대(對)를 중간에 넣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돈 vs. 예수”와 같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돈 있냐? 나는 예수 믿는다.’라든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와 멀어지는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돈으로 대표되는 세상은 예수님과 동급의 정체성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관계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설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세상과 신앙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 둘의 관계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어떤 신앙을 가지면 그에 맞는 세상을 살게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고착화시켜놓고, 그것을 예수님과 한 링에서 대결하는 구도라든가, 아니면 돌잔치 때 아이에게 선택하라고 놓아둔 돌잡이처럼 선택하는 동급의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는 식의 아주 독립되고 개성을 가진 각자의 존재로 인식하는 것도 맞지 않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표현된 물질세계, 형이하학적인 옷이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그렇게 표현된 근원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믿으면서, 행동과 생각은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했으니 세상에서 잘 살게 해 주십시오’ 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을 자신이 세상에서의 삶 대신에 선택했다는 것은 아주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그 선택에 대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 믿는데도 세상에서 일일 잘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욕하고 돌아서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모순이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사람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사는 모양은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사람이야 사람의 중심을 보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사람으로 표현된 것으로 그 사람을 가늠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에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세상과 신앙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 내용과 형식이라는 관계인데 그것이 어떻게 분리될 수 있겠는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 놓으셨는데 선택하려 하는 것은 하나님을 능가하겠다는 것이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에 있어 세상대신에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개념은 근본을 알지 못하는 개념이다. 세상에서의 사는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근본 하나님의 의만 있으면 자연적으로 따라 오는 것이다. 짚고 갈 것은 세상에서 사는 모습이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거의 반사적으로 ‘그럼 막 살아도 되는거야?’라고 반문하는데, 여기까지 읽고도 그렇게 말한다면 한 마디로 어이가 없는 것이다. 


그건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했고, 세상사는 모습, 즉 삶의 모습은 그 사람 안에 어떤 의가 있느냐에 따라오는 것이지, 막 사는 것과, 경건하게 사는 것을 선택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심만 잊지 않아도 그런 반문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출근해서 돈을 더 버는 것 보다 손해 보고 교회에 가는 선택이 아니라, 내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어, 그 의를 좇아 살면서 겪게 되는 세상에서의 상황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순종적인 것이고, 진정한 신앙은 세상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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