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 6:9-16) 매를 순히 받고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11. 3. 12:01 Writer : 김홍덕

나사들은 보통은 오른쪽, 그러니까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체결되고 반대인 왼쪽으로 돌리면 해제됩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왼쪽으로 돌려야 체결되는 나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왼나사라고 하는데, 우리 생활 주변에서는 선풍기 날개를 고정하는 뚜껑이 왼나사에 해당합니다. 이 왼나사는 왼쪽으로 돌리면 아이라도 쉽게 돌릴 수 있지만,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 방식이 옳다면서 오른쪽으로 돌려 넣으려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쩌면 왼나사를 대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이 정한 방법대로 하면 너무 쉽고 간단하며 평안한데, 그것과 반대로 우리가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상식이나 생각으로 접근하면 그 어려움은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이는 확률적인 문제나 하나님께서 비밀처럼 몽니를 부리신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목적대로 응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왼나사를 일반적인 상식과 대중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오른쪽으로 돌려 넣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나사를 개조해야하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억지로 오른나사로 변형시켜서 선풍기 날개를 고정시키는 것으로 사용하면 문제는 더 커져서 이내 선풍기 날개가 풀려서 사고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마치 이와 같아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인생을 살지 않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예수 믿는 것은 어려운 것이 되고, 신학이라며 학문과 같이 공부하게 되며, 라마단이라며 자신을 학대하기까지 하고, 본능을 억제하며 결혼을 금하고 참으며 사는 억지 인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더 웃긴 것은 그런 모습을 가진 이들을 성직자라 부르고 좋은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왼나사를 오른쪽으로 돌리려 애쓰는 바보들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때로 고난을 당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서 순종하지 않으니 갑자기 그 사람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치게 하는 것인 양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졸렬한 분이나 case by case로 대응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그것에 일일이 대응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서 벌을 주신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왼나사를 오른쪽으로 돌리듯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법대로 살지 않으니 겪게 되는 마찰일 뿐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법대로 살지 않으니 그 법에 대한 마찰을 겪을 뿐인 것입니다.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사람이 가진 육신, 그리고 그 육신의 인생을 보는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육신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일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종과 같이 섬기신 것과 같이 사용하라고 주셨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육신이 평안한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말로만 하면 기적이 일어나서 마음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좋은 신앙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자기들의 마음에 바라고 생각하는 좋은 신앙을 이루려 노력을 하는데, 하면할수록 어렵고, 그래서 스스로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성경을 다 지킬 수 없고, 그러니 단지 노력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하나님께서 노력의 정도와 여부와 정성에 따라 내리시는 은혜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바로 왼나사를 오른쪽으로 돌리려고 노력하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소비재로, 다시는 사용할 수 없도록 시간 안에 두시고, 그 주어진 시간 동안 하나님께 없는 형상을 가지고 그 형상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와 반대로 육신이 평안해지면 질수록 더 큰 은혜며, 더 좋은 신앙이며, 육신을 덜 사용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면 하나님의 큰 종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을 소비재로 주신 것이 왼나사의 목적과 같은 것인데, 사람들은 자기 눈에 좋을 대로 오른쪽으로,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인생은 참 곤고한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지으신 목적대로 살지 않기에 당하는 어려움을 시련이라고 말하고, 그 시련을 이길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어처구니없는 것을 신앙이라 기도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고, 지혜도 완전하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그로 인하여 당하는 매를 순순히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으로 보면 지팡이와 그것을 정한 이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되어 있는데 번역이 좀 건너 뛴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성경도 처음 번역하실 때 분들이 하나님의 의를 좀 더 잘 알고 있었다 싶기도 합니다. 지팡이는 인도자가 가진 의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에 순종하라는 것은 곧 그 의에 순종하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다시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을 아는 것에 수렴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그 목적이 자기 안에 생명이 있으면 완전한 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노릇을 하는 것은 공부하지 않아도, 신학대학원을 가듯 공부하지 않아도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것은 사람 안에 완전한 지혜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말하는 능력이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이지, 말하는 능력부터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들고 계획하신 것을 온전히 알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인생이 되는 것이고, 삶이 곤고하지 않게 되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왼나사를 왼쪽으로 돌리는 것과 같이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사람들이 다 하니까? 또 말하는 능력을 주신 이는 생각지 않고 말을 하게 된 이후의 삶에서 말을 어떻게 잘 할 것인지를 궁리하고 그것을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인지 궁리를 하니 이것이 바로 왼나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과 같고, 미가 선지자가 말하는 매를 순순히 받으라, 곧 지팡이로 상징되는 인도자의 의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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