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 속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생명 본성을 가지고 나는 것이다. 이는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법이다. 그리스도로 난 사람만이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생명이 있고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신다는 말이다. 육신이 살아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의학적인 생명이 하나님께 생명인 것은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생명으로 여기시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생명은 나는 것이지만 난다는 것이 생명의 본질적 목적은 아니다. 생명으로 난다는 것은 그 생명으로 산다는 의미다. 생각해보면 산다는 것은 오직 생명 가진 존재에게만 허락된 동사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 거듭난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오직 생명과 그 본성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로 난다는 것은 내 생명의 이름 곧 정체성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정의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것은 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생명으로 산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고 말하려면 너무나 당연하게 물과 성령을 인하여 그리스도로 거듭나야만 온전하게 나의 생명의 정의가 된다. 내 생명이 정의가 올바르고 온전하게 된다는 것은 내 존재의 목적이 회복된다는 말이다. 존재에게 있어 자기 존재의 목적대로 산다는 것보다 온전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산다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로 나야 한다. 그래야 생명이 있고, 삶의 목적과 의미가 회복되고 정립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면 당연히 그 생명대로 산다. 특별히 부가적으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생명으로 난 존재는 그 생명이 가진 본성에 이끌리어 살게 된다. 이것은 완전한 순종이다. 사람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란 존재에게 사람이란 정체성을 가지고 사람이 가진 본성대로 사는 것은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으로 태어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생명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로 나기만 하면 된다. 생명이 그렇다. 그렇다면, 생명이 그렇다는 것이 이해가 되고 하나님께서 살았다 여기는 생명이 그리스도라는 생명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살기 위한 노력은 필요 없다는 것도 동의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어떤 행위로 인하여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까 근심하는 두려움 같은 것도 그 안에는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그런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많이 설명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앙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리스도 안에서 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소용없는 짓이다. 생명으로 나지 않았다면 그렇다. 그러나 정말로 물과 성령을 인하여 그리스도라는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런 노력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 본성대로,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살 뿐이다. 거듭난 사람은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로 살 것인지,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답게 살 것이냐를 고민한다.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근심이고,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배움이고 성장이다.

 

그렇게 더 그리스도의 성품대로 살기 위한 근심과 배움과 삶이 바로 그리스도로 장성해가는 과정이다. 그 장성함이 성경 속 군인이 될 정도까지 자라면 자기 생명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명을 위한 삶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사도고 교사며,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며, 그 장성함이 더 큰 십자가를 지게 한다. 더 낮고 더 섬기는 자리로 간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도로 나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나야 한다. 그리스도로 난다면 그리스도라는 생명이 가진 본성이 그 삶을 이끌어 간다. 그리스도의 본성에 이끌리어 살려면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나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성경을 대하고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마치 그리스도의 생명대로 사는 것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리스도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장성함에 이르기 위하여 순종하는 것을 같은 노력으로 본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나서 그 생명에 더 순종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그 두 가지 차이를 분명하게 안다. 분명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는 것은 노력하는 신앙의 시절을 거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전조 증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이 있다. 그 죄가 바로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노력한 삶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스도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생명의 본성에 순종하고 그 장성함에 이르는 것과 자신의 노력을 같은 것으로 치부한다.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에 기도하는 것은 같아 보일 수 있지만 하늘의 뜻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순종의 기도와 밥 달라, 돈 달라, 건강 달라, 성공 달라, 배우자 달라 기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순종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의가 자신을 경영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육신이 평안해지고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라며 그것을 구하는 것은 육신의 정욕에 쓰려고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한 기만이다. 또한 이러한 차이가 분명하게 보이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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