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장 6절에서 바울 사도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라는 표현을 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기본적으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는 아들이라는 것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년 전에  최요삼이라는 권투선수가 경기 중 당한 부상으로 뇌사 판정을 받아서 장기기증을 한 후 삶을 떠난 사건이 있었다. 최요삼 선수에게는 평소 아버지처럼 여기던 박태훈(전 숭민프로모션 사장)이라는 분이 계셨다. 성이 다르니 생부는 아니지만 그는 그분을 아버지라 여겼다 한다. 그렇듯 아들이란 존재는 생물학적인 아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들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뜻이 육신으로 나타났을 때, 그 존재를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생물학적인 부자관계 역시,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자손을 두기 원하는 그 마음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를 두고 아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더 본질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가진 뜻을 이루어내는 후세의 사람을 많은 경우 아들과 같이 여긴다. 그렇듯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의와 뜻이 육신으로 나타난 존재, 그리고 그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것을 이어가는 존재가 바로 아들이며, 그 아들이 아버지의 뜻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성육신(成肉身)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아들과 성육신이란 말씀이 바로 이러한 세계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두신 뜻이 있었다. 그것은 연약한 육신을 가진 존재로 살면서 서로 사랑함으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게 하시기 위하여 창조하신 존재였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도 하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고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외모가 사람의 모습처럼 생겼다는 뜻이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그 뜻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고, 성육신되신 분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것이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입었다는 것도 우리가 그러한 법 아래에서 아들이 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 아들 안에서>라고 하는 것은 공간적으로 예수님 안에서라던가, 아니면 교회 안에서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그 법의 세계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고 뜻이기에,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살면 그 아들 안에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아들 안에서 구속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지금의 큰 교회처럼 위대해지고 화려해지고 교인들이 사회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고, 교회 안에서도 돈 있고 학식 있는 사람이 신앙 있는 사람이고 장로가 되는 그런 법을 보이셨던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스스로 내려오시는 기적을 보여주셔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보증을 받았는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시대에도 지금의 큰 교회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바리새인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그러니 지금의 큰 교회들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지금의 큰 교회들이 가르치듯, 세상에서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것과 헌금을 많이 할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행처럼 받아 두셨다가 죽고 나면 이자 쳐서 부유하게 해 주신다고 가르치는 것과, 교회에 봉사를 많이 할수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가르치는 그 가치관 앞에서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다.


즉 세상이 옳다 하는 가치관, 소유와 공로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여긴다는 그 가치관으로 볼 때 정말 보잘것없는 초라한 모습, 또 그 가치관 앞에서 하염없이 죄인 되셨고, 그 모습을 내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볼 때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난 목적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두신 목적이기에 내가 그렇게 고백될 때 내가 <그 아들 안에서> 아들이 되는 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죄 사함인 것이요, 죄인이 아들이 되는 것이며, 빚이 기업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것을 본 백부장이 “그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고백했다. 하늘이 어두워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성전의 막이 찢어져서 그런 것도 아니다. 백부장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 모습이 자기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육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의가 성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 하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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