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35-49) 몸의 부활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고린도전서 Date : 2023. 4. 14. 07:00 Writer : 김홍덕

사람은 암묵적으로 몸이 다시 회복되는 것을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부활을 육체의 죽음 그 이후의 일로 한정한다. 하지만 이런 개념으로는 바울 사도가 말씀한 날마다 죽는다는 개념 같은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럼 화장한 사람은 어떻게 돼?와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한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활은 그런 게 아니다.

 

바울 사도는 육체를 구분한다. 설마 이걸 가지고 신분을 정할까 싶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사람은 그렇게 해석하고 자기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구분, 아니 성경의 모든 구분과 정의는 하나님의 의가 기준이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사람의 육체, 짐승과 새와 물고기의 육체가 있다. 또한 하늘에 속한 육체와 땅에 속한 육체가 있다. 이 모든 기준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의가 기준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여기는 기준에 합당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과정을 보면 물고기에서 새 그리고 짐승 마지막에 사람이 창조되었다. 이것은 동물원처럼 각 개체로서 동물들을 열거한 것 같지만 가장 본질적 의미는 한 사람의 신앙 여정,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합당하게 바뀌는 과정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사람으로 거듭나면 그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안식하신다고 창세기가 기록하고 있다.

 

하늘과 땅도 그렇다. 사람은 분명 땅에서 나고, 흙과 같은 존재나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듯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사람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다. 이 사람은 하늘의 뜻이 자기 삶이 되었으므로 겉모습은 땅에서 온 사람 같으나 본질은 하늘에 속한 사람이다. 하늘에서 온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존재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졌으나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같이 사람 중에도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하늘에 속한다. 무엇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안다.

 

몸의 부활은 바로 이런 이들의 이야기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는 것으로 난다는 건 흙으로 돌아갈 육신의 삶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의를 표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는 건 바로 십자가다. 세상의 가치와 내가 옳다는 주장 앞에 육신의 수고나 심지어 목숨도 내어주는 패배자의 욕된 모습이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위해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이를 영광스럽게 또 다시 나기 강한 존재가 되었음을 말씀하심이다.

 

그리스도로 난 사람은 누구나 이와 같다. 처음에는 다른 모든 이와 같이 흙에 속했고, 신령하지 않았으나 그리스도로 거듭나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사람이 된다. 이게 첫 사람과 둘째 사람이다. 흙으로 지은 사람은 첫번째 아담이고 하늘의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두번째 아담이다. 따라서 하늘에 속한 존재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가 기준이다. 사람은 그리스도로 거듭난다고 해도 여전히 흙에 속한 자의 형상으로 산다. 그러나 같은 돈이지만 악한 데 사용되기도 하고, 같은 형상의 돈이지만 또 선한 데 사용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전혀 다른 육체다. 그리고 이 육체를 가진 이들,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로서 십자가를 지며 매일 죽는 이들에게 부활이 있다. 부활은 이들의 미래이자 현재다. 부활은 이런 이들에게만 있는 역사와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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