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4:1-25) 방언과 예언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고린도전서 Date : 2023. 3. 26. 07:00 Writer : 김홍덕

바울 사도는 사랑장에 이어 다시 성령의 은사 중에서 방언과 예언을 이야기한다. 더 큰 것을 보이겠다고 한 사랑 다음에 설명한다고 세상 지혜의 관점으로 방언과 예언이 더 중요하단 의미로 하신 말씀은 아니다. 모든 성령의 은사가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을 위한 것이란 말씀의 더 세부적인 설명이다. 은사의 주체이 성령은 사람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분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바울 사도는 둘 다 말하는 것에 관한 은사인 방언과 예언을 마주보고 있듯 설명하고 있다. 방언은 자기에게 유익하고 예언은 남을 위한 것이란 표현이 그렇다. 그렇다고 방언은 이기적이고 예언은 이타적이라는 갈라치기는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결국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남을 위한다. 그러니까 방언이 유익하게 하는 자아의 성장도 결국은 남을 위한 일임에는 다툼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성령의 은사가 주는 은혜를 입을 상대는 아직 그리스도로 거듭나지 않은 영이거나 어린 영혼일 가능성이 절대적이므로 예언이 유익하다.

 

방언은 국어적으로는 사투리다. 같은 것의 다른 표현 혹은 같은 표현의 다른 이해다. 기도라고 하면 건강을 빌고, 성경대로 살기 위한 노력이 열매 맺기를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는 하늘의 뜻 곧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과 의미를 알려 달라고 구하는 순종이다. 방언과 방언 통역이 중요한 이유다. 방언을 한다는 건 모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육신의 일을 구하는 걸 기도라고 할 때 기도는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뜻이 내 육신의 삶으로 나타나도록 나를 드리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통역은 그 의미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래서 성령의 은사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아니면 기도를 그렇게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남을 유익하게 하는 예언은 색이 다르다. 예언은 설명한 대로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먼저 산 사람으로써 일러주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로 거듭나서 살아보니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삶을 어떻게 이끌었는지를 간증하므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이 앞으로 자기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도록 일러주는 게 예언이다. 베드로에게 사람들이 너를 원치 않는 곳으로 끌고 갈 것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심령 안에서 이루어지면 아무리 발버둥쳐도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로 살 수밖에 없음을 먼저 가신 이로써 알려 주신 것이 예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바울 사도의 모든 말씀은 이처럼 성령의 기본 성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직임이 근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일을 위하여 창조된 사람에게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것 이상의 유익이나 의미가 없다. 이를 위한 헌신 이상의 사랑도 없다. 따라서 예언은 이런 성령의 직임을 따르는 은사 중 최전선에 있다.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할 사람이나 아직 어린 생명과 성령의 은사가 만나는 접점에 있는 게 예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 거듭나는 게 아닌 육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논하는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그건 방언이 없는 것이다. 예언을 예언으로 바로 알지 못하면서 말하니 방언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행여 방언을 한다고 해도 이를 가지고 당장 어린 사람,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는 공동체인 교회에서 우선되는 은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방언을 한다는 이유로 더 좋은 신앙이라 일반화하는 건 더 곤란하다. 심지어 방언을 구원의 증거로 삼는 이들도 있는데 그 어리석음은 논할 가치조차 없다.

 

결국 말에 관한 대표적인 은사인 방언과 예언, 또 굳이 이 둘이 아니어도 복음에 관한 모든 말은 듣는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는 인생으로서 누릴 가장 큰 유익을 위해서 해야 한다는 게 바울 사도의 권면이다. 얼마의 은사나 세상 지혜에 의탁한 복음을 가지고 분당한 고린도 교회를 향한 강력한 권면인 동시에 성령의 은사를 근거로 더 나은 신앙이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오늘날 교회의 모습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다.

 

다시 한 번 성령의 모든 은사와 능력과 역사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보고 논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안목이 있어야 하니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본성을 가진 그리스도라는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 이게 어쩌면 성령의 은사에 대한 말씀 저변에 깔린 복음의 본질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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