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Date : 2014. 12. 1. 16:03 Writer : 김홍덕

창세기 4장에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가인과 아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선악과를 먹고 에덴(만족) 동산에서 쫓겨 난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맏이가 <가인>이고 그 동생이 <아벨>이다.


가인의 생업은 농사를 짓는 것이고,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는데, 그 둘이 자신들의 소산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드니 양을 바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농산물을 바친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는데, 이에 격분한 가인이 그 동생 아벨을 쳐 죽이는 사건이 그것이다.



Cain interficit Abelem
Cain interficit Abelem by Nick in exsilio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이 말씀을 대할 때에 먼저는 '왜 가인의 제사는 안 받아졌을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제사는 열납되고, 어떤 제사는 열납되지 않는 세계가 열렸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님께 무엇을 제사로 드릴 것인지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양이냐 농산물이냐 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 시대는 대부분의 헌금이 돈으로 드려지고 있는데 그런 구분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종류나 성격이 이 말씀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고, 또한 어떤 것은 열납되고 어떤 것은 열닙되지 않는 세계가 열렸다는 것이 에덴동산과 달라진 사람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아는 것이 어떤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가인과 아벨에 대한 말씀을 읽고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와 받지 않으시는 제사로 제사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가치관과 연결된 생각이다. 


제사라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므로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보는 시각은 제사가 어떤 것인지와, 그 제사에 대한 사람의 태도(가인의 태도를 기준으로)를 살펴 보는 것이 더 은혜롭다면 은혜로운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우선은 가인이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시고 자신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았다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라고 말씀을 하신다. 다시 말해서 이는 제사의 열납 여부에 대하여 가인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인이 제사와 상관할 일이 있다면, 열납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그것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기다리는 것이 가인이 가져야 할 태도였다면 태도일 것이다. 그러니까 제사의 열납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가인이 '왜?'라고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오직 하나님 만이 선하시다>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이런 의미인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일에 뜻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그 결정에 순종하면 된다는 것, 그것이 오직 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그 부모인 아담과 하와가 먹은 선악과의 결과인 것이다. 이 가인은 선악과를 먹고 쫓겨난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난 자식이기 때문에 가인의 결정은 선악과의 결과인 것이다.


가인은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하여 의사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를 부끄러워 가렸을 뿐이지만 그것의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선하신대로 보여주신 결과에 대하여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사람이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주인 유대인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자신들이 가진 기준으로 볼 때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인이 자신의 제사에 대한 의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시대의 사람들도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하여 판단하는 마음이 있을 때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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