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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1:1-7) 간음과 교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7. 31. 10:01 Writer : 김홍덕

미가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높아진 땅을 낮추기 위하여 성소에서 나오시겠다고 선포하면서 사마리아의 일을 이야기 합니다. 사마리아가 이스라엘의 수치라는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점령당했을 때 혼혈 정책으로 인하여 혈통이 섞인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사마리아를 야곱 곧 이스라엘의 수치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치듯 육신의 혈통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을 인함이 아닙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적인 문란 상태에 있었기 때문을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자기 존재 목적을 떠난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간음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짝이 아닌 상대와 상관하는 것인데, 성경에서는 이를 단지 남녀의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사람의 자리, 곧 사람이 자기 삶의 목적과 의미로 삼아야 하는 것과 짝을 이루지 않고, 자기가 옳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것을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가 사마리아를 야곱의 수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적으로 문란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한 인생의 목적을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높아진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높아진 땅을 낮추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높아졌다는 것은 앞선 포스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간음이고 사마리아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정한 인생의 목적을 버리고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좇아 사는 것은 사람이 짝하여야 할 것과 짝하지 않은 간음이고, 하나님이 만드신 뜻이 아닌 다른 것을 좇겠다는 것은 자신이 자신을 만든 하나님보다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이요 높아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이란 것이 바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지자가 간음한 이스라엘, 사마리아, 방탕하고 음란한 백성이라고 하시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를 벗어나서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좇아서 사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기 옳다는 것을 좇아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치를 부여한 것을 좇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어떤 세계라도 경쟁해서 이기고, 독점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는 자리로 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그 상징이 피라미드, 곧 애굽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교회라고 사실 별반 다를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세상에서는 편법과 사회적인 불법을 개의치 않고 성공을 이루려 하지만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성경에 말씀대로 행하면 그것이 때로 손해를 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성공을 복으로 주신다고 가르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성경에 있는 말씀들을 지켜서 하나님이 그 대가로 복과 성공을 주시는 것이라는 신앙이 고착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명확히 하고 이론적, 학문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하다 보니 신앙이 학문과 자격이 되어 목사라는 타락한 신분이 생기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이 다 하나같이 사람이 자기 자리를 떠난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도 아니고, 육신의 복락과 건강을 위하여 지음 받은 존재도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세상의 성공이나 육신의 복락을 주시는 그런 신도 아닙니다. 이런 모든 결합들이 다 간음이고 교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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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2

Category : 미디어 말씀 파일/마가복음 Date : 2018. 7. 26. 12:33 Writer : 김홍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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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1:1-7) 높아진 땅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미가 Date : 2018. 7. 25. 09:27 Writer : 김홍덕

하나님께서 미가에게 임하시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미 1:3)이라는 것입니다. 땅이 높아졌다는 것은 사람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땅과 흙은 흔히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같은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을 때에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먹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곧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있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땅의 위치가 낮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낮아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시는 낮아짐을, 그것도 모자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본체이신 분이 사람들이 자신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죽어야겠다고 주장하는 주장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는 낮아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람들은 언제나 높아지려고 합니다. 단 두 사람만 마주하고 있어도 어떤 것에서라도 자신이 더 높다는 것을 증명하려 합니다. 두 사람이 다투는 것도 결국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선악과를 먹은 것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선악의 기준에 따라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높은 곳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땅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진노하시는 이유는 사실 이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높아져서 서로에게 높은 사람, 이긴 사람이 되려는 것,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실수도 않고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세상마저 이래라 저래라 주장하는 그 하나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늘 사람들에게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외침도 역시 그것입니다. 선지자들의 외침이 예언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사람들이 높아진 상태를 외친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높아져서 다른 사람을 이기려하고, 또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상태인 것을 일러 준 것입니다. 그 상태가 계속되면 그것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벌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것을 설명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자리를 떠난 존재들의 운명은 뻔한 것임을 이야기 한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에서 사람이 높아지려는 것의 본질적 욕심을 알 수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이 피라미드의 더 높은 곳에 가는 것이 복이고 성공이라고 여기며 심지어 그 복과 성공을 이루고자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앞서려 말입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으 높아진 땅을 낮추시려고 성전에서 나오시겠다는 것입니다. 높아진 땅을 낮추시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미 1:3)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셔서 강림하시겠다는 것은 빌립보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시나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과 같은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낮추신다니 불도저로 밀어버리듯 힘과 강제로 하시겠다는 것으로 들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보이신 법은 세상의 것과 다름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 높아지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 지으신 와와 뜻을 보이시고 사람이 그것을 보고서 스스로 죄를 자백하게 하시는 법으로 낮추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서 더 높고, 더 위대하고, 더 가지고, 공로가 더 많은 자리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합니다. 그래서 사사건건, 살아가면서 겪는 일과 사람들을 대할 때에 자기가 생각할 때 옳다고 여기는 대로, 자기 안에 있는 선과 악의 기준으로 구분하여 추출한 선을 추구하고 남에게 강요하며 그 뜻대로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입니다. 자기 삶에 일어나는 그 어떤 일도 자신이 주관하는 것이 없습니다. 인생을 자기 힘으로 자기 선택으로 시작한 것이 아닌데 그 삶에 어떤 것이 자기 주관 아래에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이 만나는 사람, 상대하는 사람 그 누구도 자신이 조성하거나 만든 존재가 아닙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을 자기 맘대로 나게 한다면 누구하나 예외 없이 머리는 아인슈타인 같이 몸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같이 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살아가는 그 어떤 것도 자기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이신데,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것이 바로 사람이 높아진 것입니다. 땅이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높아짐을 바로 하여 낮추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그 이유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높아졌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지도 경영하지 않는 세상에서 주인처럼 사는 선악과를 먹은 그 정욕과 안목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땅이 높아졌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신 높아진 사람,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높아짐을 낮추시려 강림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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