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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2장) 욥기를 통해 보는 사탄 – 4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2. 4. 11:08 Writer : 김홍덕

사탄의 정체


사람들은 하나님께 육신의 삶과 그에 속한 물질의 어떠함을 구합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늠하고, 또 그것으로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범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했는지를 가늠합니다. 욥기의 주제가 바로 그런 사람들의 관점이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신이신데,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답하시지 않고, 답답한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세상이 귀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될 것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사람이란 존재를 갈고 닦아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동 양식을 쌓고 쌓아 하늘에 이르려고 바벨을 쌓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존재의 신께, DO와 HAVE로 대응하는 불순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물질적 존재, 형식을 가진 존재인 사람을 만남에 있어서는 누구 하나가 상대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사람과 같이 낮아지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사랑은 하나님께서 먼저 하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날 때에는 반드시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매개로서 말씀을 하십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바위를 부수는 바람이나, 돌을 태우는 화염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지만 하나님의 그런 모습은 쉼 없이 나타나도 사람이 인지할 수 없고, 오히려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세한 음성으로 임하셨을 때에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음성이라는 것이 사람의 세계에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사람이 어떤 존재로서 하나님을 대하느냐에 따라서 그에 맞는 존재로서 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자기의 본성으로 삼는 사람에게 임하실 때에 사람은 그 임하심을 ‘하나님의 사람’이나 ‘천사’와 같이 인지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버리고 자기 육신의 정욕을 좇아서 하나님을 만나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나는 매개는 사탄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


실재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 사탄이 어떻다는 둥, 마귀가 어떻다는 둥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는 육신의 어떠함입니다. 육신이 아프면 기도하면서 ‘병마야 물러가라!’고 외치고, 육신이 어떤 욕심을 추구하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사탄이든 마귀든 그것과 상관이 있거나 침범을 받는 세계에 속했다는 것은 사탄이나 마귀가 추구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관심사가 같으니 그런 것입니다.


욥기에 나오는 사탄은 욥의 의로움은 그의 부유함과 평안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예수님을 시험한 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상하지 않으며,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귀하다며 영광으로 여기는 것을 얻기 위하여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시험한 것에서 보듯이 사탄이나 마귀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자기 육신의 평안을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을 좇아 하나님을 대할 때에 하나님이 그를 상대하실 때의 매개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합당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사나 마귀나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의를 나타내시는 모습이요 도구인데, 하나님의 의를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로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밥 달라’, ‘돈 달라’ 기도하고 세상에서의 성공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 형편이 나빠지거나 나아짐이 더디면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잘못 행하고 있다고 여기게 되고, 그렇게 되는 어떤 요인들을 사탄이다 마귀라 여기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화나고 열 받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사탄은 사람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불순종이 하나님을 만날 때에 하나님과의 접점 혹은 자신이 핑계 삼고 싶은 영적 존재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이야기 해 왔듯,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 불순종한 존재가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제 아무리 대단한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을 욥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은 한낱 하나님의 도구에 불구하지만 하나님이 사람에게 유일하게 주신 그 선택권을 육신의 정욕을 좇는 것으로 결정한 사람들이 그 추구하는 바가 방해를 받거나 이루지 못하게 될 때 그 이유가 자신들이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적에 순종하지 않았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려 하는데 방해하는 존재가 있어 그렇다고 핑계 삼고 싶어 하는 존재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존재의 하나님이시고, 사람에게 육신을 주신 것은 그 육신을 소비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자 하심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 육신의 평안과 복락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며 그것을 끊임없이 구하니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들어주실 하등의 이유가 없고,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시는 것이 더 정상인 것이라, 사람들의 그런 모습에 대응하시려 보내시는 매개적 존재가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이렇게 제법 긴 글을 통하여 사탄(마귀)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생소한 접근일 수 있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세상에 많지는 않지만 하나님을 존재의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의가 자신의 존재 목적이요 정체성이며 삶의 의미로 아는 사람들에게는 사탄이나 마귀가 아무런 상관없습니다. 한 때 유행하든 말로 ‘그게 뭐예요? 먹는 건가요?’와 같은 수준의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으니 육신 안에 있는 육신의 각종 욕망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히 받으니 그것을 제어하느라 ‘사탄아, 마귀야 물러가라!’ 싸울 이유가 없고, 하나님이 주신 육신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에 사용하니 이 육신에 거하는 것이 육신을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씌우고자 함이라는 것도 무엇인지 알며, 질그릇이란 표현도 무엇인지 알 것이기에 그것을 사탄과 마귀와 연결하려해도 연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어떤 부분이라도 대전제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은 유일하고 온전하신 신이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탄이 하나님의 관리 소홀을 틈타서 타락해서 하나님과 대적할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대전제를 무력화시키는 가정인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가정이나 이론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의를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고, 바벨을 쌓으며, 세상의 가치관과 간음하여 그 가치로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이 여의치 않자 핑계거리로 삼고자 함이 더 큽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그 성품대로 지었기 때문에 자기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좇을 수 있게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서 유일한 악함을 추구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사탄이고, 그것에 대응하시는 영이 사탄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그 신앙에는 하나님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이 만든 하나님이고, 사탄도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사탄과 같은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존재의 신을 소유와 공로의 신으로 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소유와 공로로 하나님을 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는 그 신이 하나님 같을지 모르지만 그 신이 곧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버린 하나님이요, 그 신을 창조하는 것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사탄의 본성인 것입니다. 즉 사탄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벗어난 사람이 추구하는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이 의로 여기는 모든 것이 바로 사탄인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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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2장) 욥기를 통해 보는 사탄 – 3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2. 3. 23:00 Writer : 김홍덕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에 맞서는 악함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함은 그에 앞서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 그 사람 안에 있어야 선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으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들입니다. 간첩이 아무리 선한 삶을 산다고 해도 어차피 간첩이듯, 사람이 제 아무리 사람들이 선히 여기는 일을 한다고 해도 지으신 이가 선히 여기는 존재가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위를 보고 선과 악을 가늠합니다. 선과 악의 기준이 행동이나 그 결과에 있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선과 악은 의에서 비롯됩니다. 국가라면 선하기만 하고 악하지 않은 것이 하나씩은 다 있습니다. 그것은 그 나라의 건국과 통치의 기본 이념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인 국가도 있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인 국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나라라도 그것을 악으로 보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 안에서의 모든 행위는 그 의를 기준으로 가늠합니다. 사람으로서 동일한 행동이지만 어느 나라의 국민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넘치고도 넘칩니다. 그것은 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어떤 나라라도 그 나라의 건국과 통치 이념은 절대 악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서는 하나님은 절대로 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경영하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의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생명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안에서 나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 나라의 의가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나는 것이듯 말입니다.


그와 같이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세계라는 것이 자기 생명이 되어 거듭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악할 수가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에게 악함은 없다는 성경의 말씀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이 세상은 절대로 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경영이 악하다고 여기지 않는 이상 세상은 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법과 세계 안에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존재가 있는데 바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는 악(惡)이 없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이 악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의미가 자기 자리를 떠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악함이 없기에 그 안에 있다면 악함이 없는데, 그것을 벗어나면 악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의 이념은 악하지 않으므로 그 안에 있으면 악하지 않지만 그것에 반하면 악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의 불순종


세상의 모든 만물들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의를 선택할 수 있게 두신 존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천사보다 사람이 낫다고 하시는 것의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의를 선택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에서 그 어떤 피조물에게도 하나님께서 선택의 여지를 두신 것이 없는데, 오직 사람에게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여지를 두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순이나 장난 혹은 사람을 향한 시험 같지만 사람은 자기가 선택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가 옳다는 대로 선택할 것인지를 맡기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사회에서도 자발적인 것과 의도가 있는 것에 대한 극과 극의 차이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누가 봐도 감동적인 헌신으로 대하기에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줄로 알았는데 사랑이 아니라 돈과 같이 가진 것을 이용할 목적으로 그랬다는 것을 알면 말 그대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상황이 바뀌는 감정을 사람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서 우리는 사람이 자의적이냐 아니냐의 절대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다른 피조물을 만드실 때 단지 그들의 본성이나 유전적 세팅에 의하여 살기만 하고 하나님의 오묘함을 표현하기만 하는 모든 자연과 같이 사람도 나서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의만 표현하는 로봇이나 아바타와 같이 만들 능력이 없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은 그와는 달리 자기 스스로 선택에 의하여 하나님의 의를 믿든지 아니면 자기 눈에 보이는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든지 선택할 수 있게 두신 것은 다 뜻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이미지를 나타낼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성품을 표현한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에서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고백할 존재로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백하려면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 없이 하나님의 형상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이 생명으로 여기는 생명과 안목 없이 세상으로 표현된 하나님을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가진 기본적인 본성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든가,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자의적인 줄 알았는데 의도적이었던 것을 싫어하는 것이라든가, 선함을 추구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다만 어떤 것에 대하여 그 성품을 표현하며, 무엇을 선으로 또 무엇을 악으로 표현할 것인지는 선택적으로 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 선악과에 대한 말씀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을 단순히 식물의 열매로 보고 그것을 먹는지 먹지 않는지로 사람을 심판하신 것이라고 보면 모순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데 사람이 어기는 것이 그것뿐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불순종의 대표적 사건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 강령의 불순종으로 본다면 다시 사람이 하나님을 어기는 하나의 사례로 돌아갈 뿐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만, 모든 사람에게 있지만 다양하지 않고 유일하게 공통적인 사람에게 있는 유일한 명(命) 곧 존재의 정체성을 순종하느냐 아니냐는 전혀 다른 문제인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과 종교학자, 신학자들이 성경을 행동의 강령으로 보거나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방법의 매뉴얼 정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존재적인 관점에서의 불순종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존재에 대한 불순종이 얼마나 중요하냐 하면 죄의 개념에서부터 회복과 영생에 이르는 전반적인 개념의 근간이자 뿌리면 전부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러냐?’ 묻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으시는 주된 질문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디에 있느냐?”,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인 것만 잘 알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길어지는군요. 다음 편에서 이 사람의 불순종이 사탄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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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2장) 욥기를 통해 보는 사탄 – 2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욥기 Date : 2019. 2. 1. 22:07 Writer : 김홍덕

사탄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다.


욥기에 나타난 사탄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듯 분명히 긍정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권세가 하나님을 대적할 정도의 존재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천사를 이야기 할 때 사람보다 조금 못하게 만든 존재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데, 그 천사가 타락을 했다고 갑자기 사람의 존재 정체성을 뛰어 넘게 되었다고 설정하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만든 세상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창조 질서를 단순한 타락 하나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아주 무능하게 보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경 전반을 통하여 가장 강력하게 하나님께 저항하고 타락한 존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때로 성경에서 사탄을 타락한 천사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사람은 그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나님을 거역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말이 좀 웃기기는 해도 사탄이 제 아무리 악한 존재라고 해도 사람의 악함이 한 수 위라는 것입니다. 왕의 말을 듣지 않은 자와 왕이 되려는 자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또 욥기 안에서 보면 사탄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동의하지 않고 불만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욥의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는데 욥의 육신을 괴롭게 했다거나, 욥의 생명을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죽이려 했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면에서만 봐도 사람보다는 훨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 사탄이 선한 존재거나 동정을 받을 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악함이 사탄의 악함보다 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종합해서 보면 사탄은 하나님의 통제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욥기에서는 사탄이 하나님을 ‘주(主)’라고 부르는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난 귀신도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난데없이 나타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 그 어느 하나 예외 없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하나님의 창조에 부합된 존재이듯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탄의 어떠함만을 이해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의 창조섭리 전반을 이해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그 의의 형상인 사람과의 만남에 필요한 것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에 말씀만으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때로 천사들을 보내서 어떤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말만하면 되는 분이 굳이 또 어떤 존재를 만들어서 그것을 대신하게 하실 이유는 특별히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볼 때는 하나님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절대자로서 생각하기만 할 뿐 하나님의 정체성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기 때문에 어느 날 ‘그럼 천사는 어떤 존재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 천사가 타락한 것이 사탄이라고? 그럼 사탄은 어떤 타락을 했다는 거지?’라는 문제도 궁금해지고, 그러다 욥기를 보면 ‘욥기의 이 장면은 또 뭐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봐도, 하나님의 정체성과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목적과 사람의 정체성과 같은 기본 중의 기본들이 얼마나 자신에게 순종(아멘)되었는지가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하여 아무런 개념이 없으면 성경은 구석구석 다 의문일 것입니다. 자기 안에 개념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들어와서 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자기 안에 있으면 성경이든 세상이든 다 하나님의 의로 보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안목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과 그 경영을 보는데 이해되지 않을 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형상이 없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형상이 없는 분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형상이 없는 존재를 형상을 가지고 그 형상에 의지하여 무엇을 인지하는 사람과 같은 존재는 만나거나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사람이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드신다고 하거나 의로운 오른손으로 행하신다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동일한 존재로서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가장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육신을 가진 존재들을 만나러 오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이 말입니다.


이것을 알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임재하시기 위하여 형상 혹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어떤 매개체는 그것이 천사든 바람이든 천둥이든 모두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고 기능적으로 보면 도구인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육신으로 무엇을 인지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천사도 천둥도 언어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육신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육신의 감각과 육신 안에 있는 무형의 사고(思考)에 맞추어 하나님께서 우리와 만나기 위한 낮아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육신을 가지고 있는가?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영이시니 우리도 영과 같이 만드셨으면 될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것은 하나님은 이미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 필요하신 것이 아니라, 그 영의 실존과 성품과 형상(이미지)를 나타낼 형상 가진 존재가 필요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도 있는 본성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자기 안에 있는 의와 뜻과 생각을 최소한 말이라는 매개로라도 나타내려고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다는 가장 근본적인 증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든 사탄이든 또 세상이든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것에 필요하여 사람이 인지할 매개로 표현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사탄이든 천사든 사람이든 그 무엇도 다 하나님이 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우리가 아는 사탄의 정체성이 아주 모호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평소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크게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악한 존재인데 선하신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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