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Category : 주제별 성경 보기/주기도문 Date : 2013. 1. 21. 12:06 Writer : 김홍덕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유일무이한 기도이다. 하지만 이 주기도문은 이제 큰 교회들에 의해서 예배 순서의 하나로 전락해 가고 있다. 그 의미가 인생의 전부를 걸만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시작한다. 이건 누구에게 기도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은 어쩌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무지 어디가 하늘인가? 우리가 눈을 들어 올려다 볼 때 보이는 파란 하늘이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늘인가? 그것은 아니다. 하늘은 의와 뜻을 가진 곳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늘이 정한다. 올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아 아직도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하지만 하늘이 변하면 모든 것이 다 변한다. 눈도 녹고 꽃도 핀다. 또한 하늘이 변해서 비가 오면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다 우산을 쓴다. 시킬 필요도 없다. 하늘이 변하면 다 맞추어 사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이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심은, 하나님은 그렇게 모든 것을 정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시면,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비 오는 것에 맞추어 생활방식을 바꾸듯,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는 것은 공간적으로 우주에 계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정하시고 의와 뜻을 가지신 분이라는 신앙고백으로 기도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큰 교회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주에 계신 하나님으로 가르친다. 적어도 그렇게 착각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하늘에 대한 다른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큰 교회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장소에 따라 계신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다고 여기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예로 교회의 강대상이 거룩하다는 것이다. 무소부재(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의 하나님이 강대상에 더 계신다? 그래서 더 거룩하다? 이게 정말이라고 생각하는가?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도 하늘로 올라가셨다.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봤으니 사람의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속도였을 것이다. 그런 속도로 2,000년간 올라가셨다면 지금 우주 어디쯤 가셨을까? 화성까지나 제대로 가셨겠는가? 성경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어지셨다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의와 뜻을 가진 존재로, 그런 존재의 자리로 가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성경에 기록한 것이지, 우리가 고개 들어 보는 그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한정적 이야기가 아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시며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에 나오는 하늘은 공간의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체성에 대한 자리인 것이다.


큰 교회는 교회를 아주 거룩하게 여긴다. 예배당이라는 그 장소가 거룩하다 여기며 그곳에 와야 예배가 거룩해진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수가성에서 만난 여인에게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하셨다. 즉 어느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큰 교회들은 예배당을 거룩하게 여기고, 강대상에는 특정한 신분을 가진 사람만 올라갈 수 있다는 신앙 없는 소리를 해대고 있다. 알고 보면 그 신분이란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시험 쳐서 목사가 되거나 돈으로 장로가 된 사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인가?


그렇듯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늘이라는 것이 물리적이고 공간적인 자리로서의 하늘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매주일 마다 이스라엘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소부재하신 분이라 믿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니 그분이 계신 곳이 거룩한 곳이어야지, 강대상은 더 거룩한 곳이니 아무나 올라갈 수 없다? 그런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인간이 구속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은 어디에는 계시고 어디에는 계시지 않는다고 믿지 않는 다음에서야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늘에 계신’의 하늘이 공간적인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실제로 예배당은 거룩하다. 다만 그곳만 거룩하지 않다. 또한 예배를 그곳에서 드리기 때문에 거룩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곳은 성도가 모이기 때문에 편리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면 된다. 하나님은 온 땅에 충만하시고,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언제부터 예배당 없으면 예배도 못 드리고, 거룩함도 상실하게 되었는가? 이런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을 보는 안목이 세상적인 안목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인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늘에 계신>이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 당신은 모든 의를 가지신 분이십니다”라는 고백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있어,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심에 대한 고백이다. 이것은 또한 땅이 하늘을 좇아 수용하게 되듯 사람은 하나님의 본성을 따르는 존재라는 것을 알 때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지, 예배 때 목사가 없으면 마치는 순서로 사용하는 그런 주문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이는 하나님은 모든 뜻과 의를 가지신 분으로 내가 인정하고 부를 때, 그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게 되는 것이고, 우물가 여인에게 말씀 하신 예배하는 그 때가 되는 것이다. 이는 공간에 관함이 아니라 상태에 관함이다. 하나님은 공간적으로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상태로서 모든 것의 의와 뜻과 시작과 끝이 되심을 말할 그 때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