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집이 지은 주인이 있듯이 이 세상도 지은 이가 있고 그 지은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히브리서는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집에 충성한 두 사람을 이야기한다. 주인이 있는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것이고,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주인의 의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순종하고 나타낸다는 의미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충성은 믿음 곧 순종과 하나다. 하나님이 사람에 대하여 가지신 의를 자신의 존재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순종은 사람의 믿음이고, 그 믿음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의를 사람이 순종하여 자신의 삶으로 표현하고 나타내니 충성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세가 충성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이고, 예수님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지으신 이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수용하고 나타내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 모습은 충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의 원어 해설들을 찾아보면 믿음을 의미하는 피스티스(πίστις) 와 충성을 의미하는 피스토스(πιστός)는 동일한 어원으로 같은 단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한 것과 같이 하였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그 본성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에 예수님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모든 것에 대한 충성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모세가 온 집에서 충성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에 충성했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의가 육신으로 나타나는 것이 충성이니 예수님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의가 육신이 되신 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에 충성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씀 중에는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아들로 충성하였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리고 아들로 충성한 그리스도를 설명하면서 소망과 자랑을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에 속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집에 속한다는 것은 집에 거주한다는 말씀이라기 보다 모든 집에 주인이 있다고 하시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인생이 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충성이 자신의 소망이 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인생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또 주목해 볼 것은 모세는 장래의 일을 위하여 충성하였다는 말씀이다. 모세의 충성은 장래 일에 대한 증거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세의 충성이 그리스도의 충성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증거는 일이 먼저 있고 나오는 것이다. 장래의 일이라고 한 그리스도의 충성은 모세보다 많은 세월 뒤에 나타난 것인데 히브리서는 장래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먼저라는 의미이다.


성경의 이러한 시간 개념은 자주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하신 말씀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말씀이 가장 근원적이다. 이것은 달력으로 시간을 지키는 신앙인들, 카이로스가 아닌 크로노스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알려고 노력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는 않는다. (어쩌면 그런 것이라도 솔직해야 온전한 믿음으로 가는 가능성이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로노스적인 시간, 달력과 같은 객관적 시간 개념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시간은 언제나 주관적인 시간이라고도 하는 카이로스적인 관점이다. ‘증거는 사후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달력의 시간(크로노스의 시간)이지만 증거는 어떤 계획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계획이 증거보다 먼저인 것이다. 아브라함보다 예수님께서 먼저 계셨다고 하신 것은 예수님은 인생의 존재 목적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초에 함께 계셨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충성은 그리스도의 본성이 자아내는 결과로서 그리스도가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하는 증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달력의 시간으로는 모세보다 예수님이 나중에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먼저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뜻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모세의 충성이 장래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예수님이 먼저인데 달력으로 예수님께서 나중이므로 장래의 증거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적 개념을 넘는 깊은 의미가 있다. 아브라함의 순종, 모세의 충성과 같은 모든 것은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표현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하나님의 형상 곧 이미지와 성품을 표현하시겠다고 하신 계획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본성이 아브라함의 순종으로도 나타나고, 모세의 충성으로도 나타나는 것이다. 더 본질적으로는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렇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지켜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본성이 있으면 성경을 어기려고 해도 어길 수 없다. 생명의 본성이 그것이다. 그런 삶은 그리스도와 닮음이 증거되는 것이다. 모세의 충성이 장래의 증거인 것과 같이. 이것이 성경의 본질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본질적 관점은 우리의 존재 정체성에 직결되어 있다. 즉 깊이 생각하라고 한 예수님의 정체성, 그것을 말씀과 같이 깊이 생각하면 이 말씀들이 지켜서 그리스도가 되거나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생은 하나님의 의와 성품을 표현할 존재로 지음을 받았고, 그 뜻하신 대로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살아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살았다면 흔히 유전자라 말하는 본성이 있을 것이고 그 본성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 본성을 성경은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므로 하나님의 의가 생명이 되었다면 성경의 모든 말씀은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행동과 표현이 되는 것이다. 성경이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책이니 성경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자랑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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