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5:14-21) 범사에 감사함으로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에베소서 Date : 2019. 8. 13. 08:39 Writer : 김홍덕

빛 가운데 행하고 세월을 아끼며 술 취하지 말라는 권면은 결국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알게 하신 인생의 목적대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은 주어진 시간을 목적대로 사는 것이니 진정 세월을 아끼는 것이며, 술 취한 것과 같이 인생의 목적을 몰라 어두움에 취해 살지 않는 것이 또한 그것입니다.


범사라는 것은 말 그대로 always 즉 ‘항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너무 분명한 것입니다. 타협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항상 같을 수 있냐?’라는 것과 같은 것으로 타협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축복에 관한 것이라면 성경에 적힌 글자 하나까지 지키려고 십일조의 세전 세후를 따지면서 이런 말씀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은 그럴 수 없으니 노력하라는 의미라고 타협을 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늘 즐거운 일만 있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모든 순간 감사한 상황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범사에, 항상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관하신다면서 정작 삶의 현실을 모르시는 것과 같이 느껴질 것입니다. 아마 이런 부분을 이해할 수 없어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심이 단지 노력하라는 말이라고 타협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행위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를 판단하는 안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목이 그렇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거듭나지 못했는데 교회에 다니니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데 정작 성경은 자신의 한계 너머에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단 하나 ‘항상’이라는 것이 지켜지려면 존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존재 자체가 원숭이이기 때문에 때로 원숭이답지 못한 일이 일어나도 원숭이인 것입니다. 즉 범사에 원숭이인 것입니다. 항상 원숭이인 것입니다. 때로 원숭이답지 못하므로 웃음거리가 되거나 그 일로 포식자의 먹이가 될 수 있어도 원숭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존재론적 관점입니다.


어떤 것을 존재론적으로 본다는 것은 그 속에 존재론적인 안목이 본성인 생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는 일이 잘 안 되면 회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의 기준으로 보는 사람이 행위로 판단한 것이 자기 안에 있는데 그것을 표현할 때 ‘존재론적으로 봐야지!’라면서 표현만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이다 노릇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존재 자체가 감사한 존재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셨다는 그 자체가 감사한 상태일 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인생이 아무리 괴로워도 나지 않은 것보다 감사하다고 인정이 되어야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 빛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능하니 권면한 것이지 불가능한 것을 시키는 사람이 사도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극소수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은 힘들고 괴로운 것이라는 것에서 삶의 철학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더 나아지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은혜로, 신의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더 나아지려는 것은 지금의 자리가 불만일 때 시도하는 것입니다. 인생 자체가 감사한 것이 아니기에 감사하려고 노력하고, 평안에 이르러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육신을 가진 인생에 대하여 하나님과 그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이 죄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하여 육신이 더 나아지기를 바라고 그 소망 중에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인생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범사에 감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도모하려는 사람이 그 순간을 감사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사도가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행위나 마음이 순간순간 놓치지 않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심한 듯 살아도, 또 육신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하느라 힘들고 때로는 예수님과 같이 이 잔이 옮겨졌으면 하는 마음에 곤고하여도 그런 모든 것을 안고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 중에 존재하게 하셨다는 그 자체가 감사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되었다면 그의 삶은 모든 것을 밝히 아는 빛 가운데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서 살고 있으니 세월을 허비할 수도 없고, 모든 순간 항상 같은 존재이니 범사에 감사한 존재인 것입니다. 바울사도의 모든 권면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에 관한 것이라는 것을 여기에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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