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4절까지 바울사도의 권면은 직접적인 행위규범에 앞서 행위의 주체인 본성과 정체성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하여 말했다면 15절 이후에는 실질적인 행위규범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그리스도의 빛이 비췬 사람이 되었다면 지혜롭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다양하게 설명되고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지혜는 무엇보다 자신보다 먼저 산 사람의 경륜을 자신이 몸으로 부딪혀보기 전에 수용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직접 체험하면 다 깨닫게 되지만 그렇지 않고도 먼저 체휼한 이의 삶과 권면에 순종하는 것이 참 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취셨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들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그 보이심이 자신의 생명이 된 사람이라면 자신이 예수님과 똑같은 행동이나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단 하나의 독창적인 삶의 모습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좇아 행하면 지혜로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행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비취신 빛, 그 빛으로 인하여 알게 되고 인식하게 된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잘 살펴서 그것을 좇으라는 것입니다. 지혜는 바로 예수님께서 보이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순종하므로 자신이 세월을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절약하고 계획적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혜의 정의와 같이 자신이 세월을 드려서 살지 않고 예수님이 보이신 하나님 아들의 정체성을 순종하는 것만큼 하나님 아들로 살아야 하는 인생들이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없습니다. 세월을 하나도 소비하지 않고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보다 세월을 아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으로 살면서도 그 살고 있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단지 살게 된 이상 그 삶의 도구인 육신이 추구하는 바를 좇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두움 속에 살다가 예수님께서 오시므로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에 대하여 밝아졌을 때 예수님께서 보이신 인생의 목적을 순종하는 것 보다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을 아끼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세월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끼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이 아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을 가장 잘 사용한다는 것은 존재하는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세차하고 광택 내어 세워두는 것이 자동차를 잘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구입 목적대로 이동할 때마다 잘 타고 다니는 것이 자동차의 세월을 가장 아끼는 것이듯.


그러므로 사람도 그 주어진 세월을 가장 아끼는 것은 자신이 존재하게 된 목적대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세월은 가만히 있어도, 그렇지 않고 무엇을 해도 어차피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흐르는 시간 동안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대로 사는 것이 가장 세월을 아끼고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목적을 보이셨으니 지혜롭게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순종하여 사는 것이 가장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반대로 세월을 아끼지 않는 것, 곧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면서 까지 사람들에게 보이신 인생의 목적대로 살지 않는 모든 시간들은 세월을 낭비이기도 하지만 세월을 낭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주신 목적대로 살지 않는 것이니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목적대로 살지 않는 삶은 그 시간 동안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소용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 아래서는 악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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