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12장 후반부에는 하나님의 어떤 경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의 일과 시내산에서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우상을 만든 일, 그리고 가인의 일과 같은 모습에 대한 경고다. 의도하고 있는 바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한 말씀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이런 말씀이 나왔다고 이 순간에 매몰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히브리서의 전개와 무관하게 ‘하나님이 은혜 주실 때 잘 받지 않으면 벌을 받는구나!’라고 이 말씀을 보면 주제를 놓치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을 드렸음을 알고 있음에도 하나님께, 예수님께 담대하게 나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하시는 말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은혜 가까이에 있는데 정작 그 은혜를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구원했다는 것을 알고 믿으면서 정작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바로 이 히브리서의 권면을 자기 이야기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있을 때 시내산 아래에서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다. 하나님이 강림하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의 예시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자신은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서 흠 없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시내산에서 있었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은혜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쁜 마음으로 섬기고 있느냐는 것이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는 즐거움이 동력이어야 하는데 교회에 가지 않으면 일어날 불행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에서 이 히브리서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즐거움이 동력과 본질이 아니라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은 설교를 듣고 있으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진정으로 즐거움을 알고 있다면 즐거움만 이야기하면 된다. 즐거움은 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따로 사람을 독려하지 않아도 된다. 즐거운 일은 누구나 좋아하고 추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즐겁고 기쁜 일이라는 것만 깨달으면 따로 시키지 않아도 그것을 하려고 늘 애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받는 신앙의 권면은 그렇지 않다. 산앙적 권면과 설교의 절대적 비중이 ‘~하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것, 좋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앞서 하나님의 징계라는 관점과도 많이 다르다. 하나님의 징계는 좋은 것을 보이심으로 자신이 징계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색깔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것도 같다. “하나님을 기쁘게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내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징계를 받습니다”라는 것이 히브리서 12장 후반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드린 희생이 우리에게 기쁨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진동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나 더 이상 죄를 위한 제사가 없다는 말이나 같은 말이다. 진동하지 못할 나라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더 이상 나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것을 은혜로 받았다면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게 된다는 말씀이다. 더 이상 죄 없는 인생이라는데 그것이 기쁘지 않으면 기쁠 것이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기쁨을 알지 못하는 것, 예수님이 우리를 더 이상 죄 없는 자로 구속하셨음에도 오늘도 기도할 때 마다 회개하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미래의 재앙에 보험을 들려고 하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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