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천지창조는 그리스도라는 정체성이 나의 삶이 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시작될 때, 그 때가 시작이고, 그런 인식이 있기 시작하는 그 때가 바로 빛을 만나는 순간이 되는 것이다. 필자도 어려서 부터 교회를 다녔고, 집안 자체가 고향인 대구에 기독교가 전파되던 그 시점 부터 대대로 교회를 다니던 집안이기에 어려서 부터 성경을 알고 자랐지만 대학생이 되고 생각이 있기 시작하자, <"이 신앙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교회에 다니는가?">하는 질문에 부딪혔다. 그것이 바로 땅이 혼돈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필자를 기준으로 본다면 나이 30이 될 때까지 신앙에 대하여 시도한 많은 검증들이 혼돈이었던 셈이다. 그러다 이 성경의 말씀이 <행위(규범)>가 아니라 <존재(규범)>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때가 바로 빛이 비췬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 이전에 어떻게 예수를 믿었던 간에 ......


사람이 빛을 만나면 모든 것을 인식하고 모든 것의 의미를 알고 그 목적에 맞게 사용하게 된다. 늘 자신이 거하는 방도 빛이 없고 어두우면 늘 사용하던 선풍기에, 책상에, 침대에 부딪혀서 다치기도 하는데, 그것은 혼돈인 것이다. 그때는 만사가 다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된다. 내가 늘 사용하는 물건들, 아끼는 물건들 그 모든 만사가 다 나를 괴롭히는 것 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들이 나를 괴롭히려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빛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다 방의 불을 밝히면 모든 것은 다 나를 위한 것으로 돌변한다. 책상도 선풍기도 침대도 다 나의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물건이 되고, 나 또한 그 모든 것의 존재 목적을 알고 그 목적대로 사용하는 것에 전혀 지장이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이 빛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도 빛을 만나기 전에는 이 세상은 늘 괴로운 것이고, 세상의 모든 일은 다 나를 버겁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어떤 빛을 만나면 어두웠던 방에 불이 들어 온 것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나를 위한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목적을 알게 되어 내가 그것을 다스리고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람이 바로 그렇게 살 수 있게 되는 빛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빛인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한 빛은 당연히 하나님의 빛이다. 그리고 이 빛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그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 천지창조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알게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어두운 방에서 자기 물건에 치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 물건을 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전등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이 땅에서의 삶이 자기를 괴롭히고 힘들고 지치게만 하는 것 같은 세상의 모든 만사를 자기 방의 물건과 같이 목적대로 사용하고 다스리게 하는 빛이시라는 것이다. 


이 빛이 바로 천지창조를 시작하는 빛인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을 알게 하고, 사는 목적을 알게 하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사람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하여 감사하게 하는 삶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고 인식되는 그 시작의 빛이 바로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있으라고 하신 빛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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