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창세기에 나오는 천지과정의 전과정을 한번 요약해 보자. 첫번째 날의 시작은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었다. 이것이 시작이라고 하셨다. 이것에 대하여 필자는 <빛 = 인식>이라고 했다. ([평교인의 성경 보기/창세기] - (창세기) 천지창조 첫째 날 - 빛이 있으라(1) 빛의 물리적 성격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빛이 있으면 인식할 수 있다. 그래서 희망의 빛이라는 말도 있고, 컴맹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컴퓨터를 모르면 빛이 없다는 의미로서 말이다.


그러므로 천지가 창조되는 것은 어떤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 무엇이 무엇이냐고 할 때, 그것은 이 빛을 누가 있으라고 했느냐 하는 것을 보면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성품과 안목으로 세상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 인식에서 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빛 이전에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싶음 위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땅이 혼돈하던 이때는 태초보다 이전 아닌가? 그럼 이때의 시간 개념은 또 무엇인가? 그러므로 이것은 객관적인, 그러니까 달력이나 시계로 환산하는 시간과 그 시작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쨋던 하나님에 대한 인식 이전에는 땅이 혼돈했다 했는데, 땅이 혼돈했다는 것은 사람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성경에는 많은 부분에서 사람을 땅으로 표현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농부라는 말씀이다. 농부가 씨를 뿌리듯이 사람이라는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는 것이 바로 그 표현이고, 이렇듯 땅은 사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땅이 혼돈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사람은 혼돈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둡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어둡다는 것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둡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천지창조의 과정이 결국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게 되는 것이기에 흑암은 다른 흑암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흑암인 것이다.


그리고 이 흑암, 즉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른다는 것이 바로 땅이 혼돈하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면 사람이 혼돈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혼돈스럽고 인류가 답을 쉽게 얻지 못하여 혼돈하는 모든 것은 결국 <사람이 무엇인가?>, <인생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와 같은 인간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은 인간이 인간의 정체성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혼돈이고, 어두움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천지창조의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 <사람이 무엇인가?>, <인생이 무엇인가?>, <왜 사는가?>와 같은 인간 정체성에 관한 해답을 얻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과학이나 철학이나 또는 돈이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빛으로 인한 인식으로 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바로 천지창조의 과정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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