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까지 계속 <천지창조 =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왔다. 기존의 관념들이 너무 <천지창조 = 물리적 세상의 창조>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이 관점이 수정되는 것 그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세계가 열리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 역시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내가 인식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자연 발생적으로 생겼다는 과학에 비중을 두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그것을 그렇게 인식하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인식하기 시작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비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이라는 것은 성경에서도 비추어냈듯이 이 하나님의 세계는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되는 것, 그래서 그 생명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을 말하며 그 시작이 바로 하나님 세계의 창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다 그리스도를 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중요한 면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교회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그렇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교회가 크다는 것은 이미 형식에 치중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형식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내용이요 본질에 관한 것이다. 즉 사람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내용과 본질에 관한 것이다. 



형식 

내용/목적/본질 

물리적 세상 

하나님의 세계 

사람의 육신 

하나님의 형상 

교회의 건물 

그리스도의 몸 



그러므로 좋은 건축자재와 오르간이 비싸면 비쌀수록 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관은 다 본질과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된 것이기에 큰 교회, 그리고 교회가 커지는 것인 영광스럽다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관은 이미 그리스도의 반대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즉 심령(내용)을 보려하지 않고, 겉모습(형식)만 보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치관은 필연적으로 천지창조를 물리적인 세상의 창조에 국한되게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스도를 다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르는 것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의 과정은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사람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달성되었다는 것이다. 수능을 치면 수험생이 안식하는 것 처럼 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안식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사람이 선하고 죄가 없을 때, 비로서 가능한 일이다. 그 첫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아니신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안식하신다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안식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게 되는가? 하는 것을 개론적으로 말씀하시는 성경이 바로 창세기의 시작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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