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목욕한 자와 세족의식

Category : 김집사의 뜰/복음 담론 Date : 2023. 8. 16. 15:19 Writer : 김홍덕

회개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말씀이 있다. 바로 세족의식이라 일컫는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 13:8-10)

 

 

<회개를 계속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구원은 '생명을 얻는 것'이라 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는 걸 간과하면 안 된다. 그런 구원을 얻기 위한 회개가 여러 번이 될 수 없는 근원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생명을 얻는 거듭남이 한 번이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일 또한 단번에, 한 번만 있는 일이다. 이렇듯 한 번의 일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절대 조건이 회개라면 회개는 당연히 한 번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욕한 자는 바로 구원을 얻은 사람이 틀림없다.

 

그런데 목욕이나 발을 씻는 건 씻는다는 행위로만 보면 같은 부류로 보인다. 즉 목욕이라는 회개를 했다고 해도 다시 발을 씻는 회개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게 있다. 발 씻기는 걸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내가 발을 씻기지 않는다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다. 무엇보다 발은 예수님이 씻기는 것이지 베드로나, 우리 자신이 씻는 게 아니다. 이건 회개에 관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한 말씀이다.

 

발은 자기가 씻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계속 회개하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이 아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말씀, 곧 메시지는 목욕했더라도 계속 회개하라는 게 아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게 예수님의 의도다. 본을 보였으니 너희도 행하라는 게 예수님의 의도다. 그러니까 발을 씻기고, 서로 사랑하는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다. 이 말씀의 다른 버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이건 구원을 좌지우지하는 회개에 관한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십자가를 지신다. 분명히 지지 않아도 되는 십자가지만 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처럼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각오하고 신념을 가지고 지신 십자가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려서 지신 십자가다. 이 또한 구원과 회개 못지않게 기독교인들이 모르고 착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의도는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즉 나와 같이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고, 다른 사람이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는 주장 앞에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라는 의도다. 신념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그렇게 하는 게 복음인데,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은 이미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확증하신다.

 

물론 예수님께서 발을 씻기실 때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가룟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건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룟유다는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에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확정했다. 예수님께서 그를 깨끗하지 않다, 목욕하지 않았다고 하신 이유다. 목욕했다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1명의 제자는 십자가를 진다는 예수님으로 인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지만, 예수님은 이들을 두고 이들로 인하여 영화롭게 되었다고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17) 그리고 발을 씻기지 않으면 나와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발을 씻겨야만 상관있어진다는 게 아니다. 이미 상관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그 상관성,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듯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은 그리스도답게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고, 남에게 육신과 그 수고를 내어 주어야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는 말씀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신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발은 자기가 자기 발을 씻는 게 아니다. 자기가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게 아니라는 의미다. 구원을 좌지우지하는 죄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다움에 관한 말씀이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사랑을 표현할 때 목욕한 자, 곧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다움이 표현된다는 의미다.

 

예수님과 상관이 있다는 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과 같은 그리스도로 거듭났으면 그리스도다움을 나타내어 그 상관성을 보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구원의 단 하나의 조건인 자기 죄를 회개하는 건 아버지를 갈아타지 않는 이상, 한 번만 하면 되는 일이다. 다만 아들로 살아갈 때 아버지의 아들다움으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들이란 정체성이 바뀌진 않는다. 죽을 수는 있어도 이 관계는 끊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들이 간혹 잘못된 행동을 해도 그 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끊어질까 염려하진 않는다. 이건 회개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가는 게 아닌가? 염려하는 것과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에게 있어 일상의 회개는 늘 자신이 그리스도답지 못함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한다. 이런 반성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는 출발점이다. 분명한 건 거듭난 사람은 잘못 때문에 구원에서 멀어질까? 아니면 천국에 가지 못할까? 염려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 구원받은 사람도 사회적인, 또 도덕적인 죄나 실수를 범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진정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일로 벌을 내리거나 구원에서 떨쳐내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아들과 아버지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는 있어도 그 관계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사람에게 있어 일상의 회개는 그리스도로 살지 못한 순간에 대한 반성이다. 남의 발을 씻기고, 그리스도의 본성대로 다른 사람에게 육신의 수고를 내어 주지 못한 일에 대한 반성이지 구원의 변경시키는 죄가 아니다. 이것에 관한 믿음도 없다면,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확신이 없다면, 아닐거라 아무리 부인해도 자신이 구원받은 존재라는 걸 오히려 부인할 수 없는 지경이 아니라면 지금 구원받은 게 아니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구원받을 만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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