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은 서로가 서로를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가 되려면 아들이 있어야 하고, 아들이 되려면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존재하게 하고 아버지는 아들이 존재하게 한다. 절대적인 관계이다. 아들 없이 아버지라 불릴 수 없고, 아버지 없이 아들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의 안에 있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그러므로 아들을 부인하면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를 부인하면 아들이 없다는 것이 요한 사도의 말씀이고 이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말씀이다. 다만 아들을 부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가 포인트일 뿐이다.


요한 일서에서 또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육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창조하실 때 사람에게 목적하신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처음 전해들은 말씀(요일 2:24)이다. 이것은 요한 사도가 서신을 쓸 당시의 사람들이 들은 처음 들은 복음이기도 하고, 인류 전체로 보아도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에게 두신 첫 말씀(하나님의 의도인 LOGOS)인 것이다.


이 처음 말씀을 부인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모습을 고칠 것이 있는 것으로 보는 관점이 하나님의 의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교를 사람이 가진 악한 것을 고쳐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이 가진 악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의 정체성을 부족한 것으로, 이 상태로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아들을 부인하게 된다. 그런 생각은 이 육신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으니 율법을 지키고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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