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문안하면서 자신의 처한 환경에 대한 복음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먼저 자신이 옥에 갇혀 있는 이 상황은 복음의 진보라는 것과 다음으로 자신이 그렇게 옥에 갇혀서 죽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이나 또 풀려나서 다시 복음을 전하고 성도들과 교제하게 되는 양단 중에 어느 것도 다 그리스도를 존귀케 한다는 것과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 곧 고난이 하나님 앞에 은혜로운 것이기에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도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짧게 고난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에 가면 복음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만 사실 그런 이야기는 많은 부분에서 고진감래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세상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목적을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기 힘든데 일어나서 새벽기도회 오는 것이나 마음에 화가 나는데 부자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참는 것과 같은 것을 고난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만입니다. 금도끼와 은도끼를 바라며 도끼를 던진 나무꾼과 같은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마디로 예수님과 같이 의인이 죄인들의 주장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목적이 자기 안에 있어 구원과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움을 얻은 사람이 세상과 자기 의로서 주장하는 것 앞에서 수고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수고한다는 것은 육신을 드려서 수고하는 인생의 소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에 의로운 것이나, 육신의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기에 그 수고의 어떠함이 고난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에 대한 그런 하나님의 경영이 가진 의미를 온전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인하여 인생의 수고를 감당한다는 것은 고난이나 그것은 스스로 알 수 없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막연히 사는 이유도 모르면서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인생의 고난과는 다른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의 여정과 모습은 빌립보 성도들이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다는 것 마저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아주 핵심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울 사도가 빌립보서 1장 마지막에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빌 1:30)


자신이 걷고 있는 이 복음의 여정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믿는 성도들도 걷게 될 것이라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역설적으로 바울 사도와 같은 길을 걷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단편적인 예로 육신이 험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거나 경고를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치며 말하는 사람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빌립보서 1:30절에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믿음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있어서 그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믿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성경이 전하는 아주 본질적인 믿음의 정의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 믿음에 대하여 크게 오해합니다. 공부하기를 바라는 아들에게 엄마가 ‘아들, 난 너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많은 경우 아들이 엄마가 바라는 대로 해 주기를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능동적인 것입니다. 말이 부드럽든지 험하든지 본질은 그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아들이 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일 것이기에 그것을 위해서 엄마는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아들을 지원한다는 것이 옳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과 하나님을 믿는 것도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입에서 바람새는 소리로 간곡하게 기도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을 믿는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자신이 그것을 위하여 수고하겠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움직이는 것이 믿음이지 자신에게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어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 임해서 우리가 육신으로 그것을 수고하여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낸다는 것이 그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것이며,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그것이며, 그것이 사람의 존재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것은 바로 그 목적을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심령에 받아 그것을 삶으로 표현해내는 이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겠습니까? 온전한 믿음과 육신의 삶의 목적을 아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은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통해서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시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가지신 뜻이 이 땅에 사는 사람 누군가의 본성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the Man을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이기에 사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때는 환호하였지만, 지극히 사람다운 모습, 자신들과 동일하게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에 저주하고 오히려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사람 이상의 메시아는 믿겠지만 사람으로 나타난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날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더니 암이 치유되거나, 남다른 노력을 하는 힘이 생겨서 세상에서 성공하게 되었다고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고, 복음으로 살기에 가난하거나 세상에서 성공이라할 만한 것 없이 살면 ‘그렇게 살아서 되겠느냐?’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욥의 친구들과 같이 ‘저의 삶에는 하나님께 회개할 것이 있다.’고만 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다면 그렇게 살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 사도와 같이 옥에 갇힌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는 것이지 복음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사람 이상의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사람들이 극복하고자 하는 인생의 연약함에 귀속된 모습을 보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의 결정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에 사람 보러 가나 하나님 보러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사람 보러 가는 것이 아니면 교회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보러 갈 값이라면 천지에 충만한 분이 하나님이신데 뭐하러 보지도 않을 사람들 많이 모인 교회에 가서 만나겠습니까? 그냥 집에서 편안히 누워서 만나면 되지?


그러므로 결국 믿음은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그럴 것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사람 아닌 다른 존재로 이 땅에 오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이 전해주는 것 보다 자신이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글보다 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이해가 되는 것도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람으로 표현되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서는 온전한 믿음이 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사람의 연약함, 옥에 갇히기도 하고, 세상의 가치관으로 볼 때 죄인이고 패배자가 되어 가난에 처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사람으로서의 노력으로 열매를 얻기도 하는 그런 육신의 모든 삶을 통해서 표현되는 하나님의 의와 뜻을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사람의 일이니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우상숭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복음으로 인하여 수고하고 육신을 소비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보고서도 그것이 복음임을 믿지 못하며, 그 삶을 사는 사람을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믿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결국 사람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Translation by Google)


(Philippians 1: 12-30) Believing in man is a perfect faith


The Apostle Paul saluted the Philippian Saints and revealed the evangelical view of their circumstances. First of all, the situation in which he is imprisoned is the progress of the gospel, and the next one is to die because he can be drowned because he is so prisoned, but both are released and come to reunite with the saints. That God's grace is in harmony, because the situation that he is in, the suffering, is gracious to God.


First, let's talk about short suffering. The reason is that when you go to church, you have to suffer with the gospel, but in fact, it is a story like a quake. It is hard for people to rise up in the world for the purpose of succeeding in the world because of their dependence on God, and it is difficult to get up at dawn prayers and angry hearts, because they say that suffering is the same as enduring in the name of God in order to become rich. But it is not hardship. It is a deception. It is like a woodcutter who throws an ax with a gold ax and a silver ax.


It is not a hardship, but just as Jesus is, the righteous become sinners in the claims of sinners. It is the suffering that God has made in the cause of the world and of his own self in whom the man has the purpose of salvation and righteousness before God. It is to say the consumption of the life which does the hard work by giving the body. It is because God is the purpose for which He has created us, so that we must bear the righteousness and the labor of the flesh, and that is what the suffering is.


The apostle Paul fully knew the meaning of God's management of himself. We knew that because of the righteousness of God, the suffering of life is a suffering, but it is the grace of God that made us aware of the meaning of our being that we can not know for ourselves. And I knew that the suffering was different from the hardships of life that I did not die because I did not even know why. And most of all, I knew that my journey and my life was like anyone who lives a life worthy of the Philippians or the Gospel.


Here we can find a very essential element of faith in God. It is not different, but because of what the Apostle Paul said at the end of Philippians 1.


having the same conflict which you saw in me and now hear is in me. (Philippians 1:30)


This gospel journey, which he is walking on, tells us that the saints who believe in the gospel he preached will also walk. If so, this is paradoxically that if you do not walk the same path as the apostle Paul, you do not know the Gospel. In a fragmentary example, a person who thinks, teaches, and speaks of the fact that when the physical body is hurt, it is punished or warned by God means that he does not know the gospel.


But above all, there is something important in Philippians 1:30, which is about the identity of our faith. That people have a clear sense of what they believe in believing in Jesus. It is about the very essential definition of faith that the Bible tells us that believing in people is about believing in Jesus Christ.


People actually misunderstand about faith. To my son who wants to study, my mother says, 'I believe in you, son!' In many cases, my son believes that he can do what he wants. This is very active. Whether the horse is soft or harsh, that is the essence. But truly believing in a son is a belief that it is right for her to support her son, even though she is different from her own, because everything that she does is for her.


This is what people believe in Jesus and God. Most of the people praying to God and praying "with faithfulness in God!" While praying with a loud voice in their mouth believe that God will do what He wants, I do not mean to do that. In other words, it is faith that God moves, not the movement of oneself through the will of God.


Such a perfect faith is not the work of God, bu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to me, and we will manifest it in the flesh. It is that man manifests the image of God, that the will of God is fulfilled, that the will of heaven is made on earth, and that is the purpose of man's existence.


God created us for the very purpose. When that happens, God's work will take place. How does God work when there is no one who receives God's will in his own mind and expresses it in his life? Without a person who knows the purpose of perfect faith and the life of the flesh, God's work does not happen to man.


In other words, God's work happens to man through man. That is why Jesus came to this earth in the flesh. The work of God is not only done by God in the heavens, but by His Word. It is meaningless if God's will in heaven does not appear in the nature of someone who lives on this earth. That is why Jesus came to this earth as a body of flesh. That is, God's will is expressed as a man of flesh.


Therefore, to believe in God is to believe in people. I do not believe in the Man. It is believing in the righteousness of God expressed in human beings, so we must believe in people. At the time of Jesus, people cheered when Jesus was doing things they could not do as a person, but cursed when they saw the most manly appearance, dying on the cross as helpless as themselves, and chose Barabbas rather. The Messiah, who is more than a person, believes, but God who appears as a person is incredible.


And this is also true today. If you believe in God, that cancer is healed, or that you have made an extraordinary effort to be successful in the world, if you live in glory to God, in poverty in the gospel, or in the world without success, will you live? I have no comfort, and like Job's friends, I say, 'In my life there is repentance to God.' If you believe in God, you do not live that way. In other words, if you are imprisoned in prison like Paul's apostle, it is the idea that God punishes, not the gospel.


These people's thoughts do not believe in God. It is to believe in God when something more than a person happens to a person, not to believe in God that if God shows us that he is attached to the weakness of life that people want to overcome. That is, not to believe in people. There is a definite idea of ​​these people's thoughts, that is, "go to church and go to God?" But there is no reason to go to church unless you are going to see people in church. If you are worthy to go to God, who is the one who is full of heaven and earth, will you go to church where there are many people who will not see? Why do not we just sit back at home and meet?


So in the end faith is to believe in people. It is the righteousness of God expressed by man, or man can not know. If not, Jesus would have come to this earth as a non-human being. Where does man understand himself better than man speaks? It is more understandable to meet a writer than a writer. Therefore, the gospel can not be a perfect faith without seeing people and seeing God expressed as a person.


God's righteousness expressed through all the life of the flesh, which is in the weakness of man, in prison, in the world's values, sinners and losers, in poverty, and sometimes in human endeavors. And if you do not believe or see that it is the work of man, it is not faith but idolatry. Because God is not such a God. It is not a faith unless one can see that one is consuming labor and body because of the gospel, and the report does not believe that it is the gospel, and that the person who lives it is another Christ. Because perfect faith is ultimately a faith in m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