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9-11) 성령이 비둘기 같이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1. 31. 09:29 Writer : 김홍덕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같이 내려왔다. 기적 같은 일은 성령이 어떤 분인지 생각하게 한다. 성령께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 받는 광야로 몰아냈다고 하시는 말씀 역시 그렇다.

 

어떻게 보면 팀킬 같고 모순 같은 이런 말씀은 신학 같은 공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성령의 일이다. 심령에 성령이 임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구원을 받았다면 세례 받는 예수님께 임하고, 한편으론 시험에 몰고 다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이질적인 모습이 이해될 수밖에 없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 성령의 일을 모를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사람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가 되기를 바라심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 생명이 그리스도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일은 성령의 일이다. 성령이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고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임을 증거한다. 이런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시작이다. 복음과 구원은 성령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작은 우리가 율법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고백, 세례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것을 이것을 보여 주심이다.

 

그리스도로 거듭난다는 것은 율법으로 없다는 세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스도가 보여주시는 것이다. 마치 훌륭한 선수시절을 보낸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시범을 보이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보여주고자 하심의 핵심이 성령이 임하시는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고, 세례를 받으시니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니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을 인하여 그리스도로 거듭나는 모든 사람에게 어떻게 성령이 오시는지 보여준다. 바로 세례다. 율법으로 없다는 , 행위로 의로워질 없다는 것을 고백할 성령이 오신다. 성령은 존재의 하나님 여호와의 영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앙인들은 자신의 신앙이 분명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신앙, 세례를 받지 않은 신앙이지만 다들 모습이 같으니 그것을 모른다. 성경을 육신의 행함으로 지켜내려는 신앙, 예수를 믿으니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는 책임이나 신념의 신앙, 하나님께 행여 받을까 두려워서, 혹은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면 자신이 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십일조하고, 예배 참석하고, 조심하고, 속에는 화가 나는데 예수 믿으니 참자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례에 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성령이 임하지 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반대로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율법으로는 없고 의로워질 없다는 고백의 세례에 임하므로 성령이 임한 사람은 성경대로 살지 않으려 해도 어쩔 없이 성경대로 사는 자신을 발견한다. 거듭난 <생명>이기에 당연하다. 생명의 본성은 거스를 없다. 성령으로 잉태된 그리스도의 본성은 감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겐 세례와 함께 마귀의 시험이 있다. 둘은 사실 같은 맥락이다. 행함으로 의로워질 없다는 고백이나 율법의 상징인 돌을 먹거리, 자기 삶이 것이라는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 임한 성령이 시험 받는 광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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