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8) 광야의 물세례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1. 23. 11:17 Writer : 김홍덕

세례 요한이란 말에서 있듯 요한은 세례를 베푸는 사람이다. 세례는 회개의 의식이다. 물에 잠긴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므로 물에 잠겼다 나오는 것은 이전 것을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세례에 임한다.

 

앞서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했다. 세례 요한의 모든 것은 광야와 연결되어 있다. 광야는 자유가 있는 곳이 아니다. 출애굽 여정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일어서면 단지 그것을 따라 진행하는 것뿐이었다. 이를 어기면 광야에서 살기 어렵다.

 

그래서 광야는 육신으로 말씀을 지켜내는 율법적인 삶의 표상이다. 광야에 거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은 율법적인 삶의 상징이자 최고봉이다. 그리고 하나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다. ‘물에서 건진 사람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고, 물로 인하여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베푼 세례는 물세례다. 율법으로 없다는 고백을 하게 하는 세례가 물세례란 뜻이다. 물에 잠기면 죽고, 속에서는 없기에 물에서 나오는 물세례는 물로 상징되는 율법으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세례다. 율법의 최고봉인 세례 요한의 세례는 사람이 육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낼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세례다.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이 물세례를 받은 사람인가의 문제다. 기독교 안에서 세례를 두고 물에 잠기는 의식을 행해야 한다는 교파가 있고, 머리에 물을 찍어 안수하는 교파가 있다. 세례를 기준으로 교회가 갈라진 것인데, 육신의 행위나 형식에 대하여 죽었다는 고백의 세례의 형식을 가지고 교회가 갈라졌다는 것은 마디로 교회가 세례의 의미를 모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세례의 의미를 모르는 교회에서 받은 세례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례가 리는 만무하다. 일반적인 교회에서 의식으로 행하는 세례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세례를 오히려 부인하고 있다. 행위와 형식에 대하여 죽고 다시 살겠다는 고백의 세례의 형식을 중히 여겨 교회가 갈라지고, 세례 유무에 따라 교회에서 대우가 달라지는 (성찬식, 집사 임명 ) 이를 증명한다. 그런 교리 안에서 받은 세례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한 세례는 행위로 성경을 지키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

 

진정한 세례는 행위로 성경을 지키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이다. 여기서 구약은 율법, 신약은 복음이라는 생각은 논쟁의 가치조차 없는 어리석은 사고방식이다. 자기 안에 거듭난 본성이 이끄는 행위와 삶이 아니라 성경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행하려 노력한다면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라 해도 율법이 된다. 율법의 정의는 의로워지고 노력이나 신념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율법은 의로워지려는 목적으로 노력이나 신념으로 말씀을 행위로 지키는 것

 

따라서 진정한 물세례는 침례나, 물로 안수 받는 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지켜야 하는 어떤 이유나 목적을 인하여 성경을 지키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어쩔 없이 지키는 본성 없이 지키려는 자신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없을 아니라 그것은 죽음과 같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이 아니라면 없는 세례라고 해도 아무 의미 없다. 오히려 온전하지 않은 세례를 온전한 것으로 여겨 진정한 세례를 받을 이유를 망각하게 되는 깊은 사망에 빠질 뿐이다.

 

광야에서 베푼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위한 필수적 단계다. 자신이 지금까지 행위로 의로워지려는 신앙 안에 있었다는 고백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될 없다. 복음은 노력이나 신념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본성에 이끌려 어쩔 없이 성경을 지키게 되는 존재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성경을 지키지 않으려 해도 지킬 수밖에 없는 본성이 자기 안에 없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되지 않았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물세례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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