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그대로 복된 소식이다.(Gospel 어원은 Good News(spell)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사람에게 복된 소식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을 기준으로 두고, 복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식의 대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믿으면 문제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과는 다르다.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을 있는 모습이라 수는 없다.  그런데 단순하게 사람과 세상이 가진 복의 개념 하에 예수님을 무작정 복음이라고 여기면 결국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예수님께 바라는 신앙이 된다. 바로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a christ) 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생명, 생명이 가진 본성으로 사는 새로운 시작이 거듭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이다. 따라서 복음은 그리스도서 살아가는 삶이다.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다. 마가복음은 바로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세상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세상에서 되는 것이 복이라면 세상에 복음은 넘친다. 어디 가나 세상에서 되는 법이 여기 있다고 외친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것이라고 하신 말씀대로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구원자란 말이니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말들은 사람이 세상의 복을 받지 못한 자리에서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외치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도 그런 복을 주는 부류라면 굳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십자가를 이유가 없을 아니라, 예수님을 복음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성경을 이유는 매우 빈약하다. 사람이 바라는 복을 외치는 소리는 세상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는 그런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인생에게 진정한 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것을 말할 복음으로 들린다.

 

마가복음은 말씀을 하는 복음서다. 물론 다른 성경 모두가 그렇다. 요한 사도는 마가복음이 말씀하시는 <시작> <태초>라고 했다.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이 시작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시작을 세례 요한부터 설명한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다른 점을 부각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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