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참 많은 선한 일을 한다. 정확히 표현하면 자기가 생각할 때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큰 교회 안에는 여러 조직이 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경우 자기가 봉사하는 부서를 제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즉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선하는 이야기다. 뭐 어떤 것이라도 좋지만,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를 위한 간구에는 선한 일로 열매가 맺어지기를 간구하고 있다.


오늘 날도 어떤 사람은 해외봉사라는 선한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노숙자에게 밥을 퍼 주는 봉사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장애우를 돌보는 선한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병든 사람을 돌보는 선한 일을 한다. 그런 일들은 분명히 좋은 일이고, 할 수 있는 대로 권장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일들은 우리에게 어떤 열매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한 일에는 열매가 있어야만 선한 일이 된다는 한정적인 구속을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제자가 부친을 장사 지내고 오겠다고 하니 죽은 자는 죽은 자로 하여금 장사 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신 적이 있다(마 8, 눅 9) 장례를 치르는 것과 선한 일을 하는 것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에서는 비슷한데, 예수님께서 부친의 장례보다 자신을 따르기를 원하셨던 것은, 세상에 있는 어떤 일이 되었든 간에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에 대하여 교훈이 되어야 그 일이 의미가 있어 지는 것이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그 어머니 마리아를 보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 이다(요 19:26)’라고 말씀 하신 적이 있다. 이는 여러 해석이 있겠으나, 마리아여 당신에게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왔으니 당신의 삶은 온전한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것 역시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결국은 그 일을 겪는 사람이 더 예수를 닮아가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얻어가는 교훈을 주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간구에 ‘모든 선한 일이 열매 맺게 하시고’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골로새 교회의 형제들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들 자신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 알아가게 되므로 골로새 교회의 형제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열매 맺게 되기를 바라는 간구인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선한 봉사활동을 하고 예수님을 더 알아 가는 열매는 없이, 선한 일을 했다는 그 사실에만 의미를 둔다면, 그 선한 일을 공개적으로 했던, 비밀스럽게 했던 또한 자랑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그건 그냥 선한 일을 한 것뿐이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친의 장례도 예수님을 따르는 것 보다 중요하지 않은 하나님의 마음인데, 노숙자에게 밥 지어 줬다고 하나님 앞에서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무엇이 선한 일인가?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일이 되었던 그 일 가운에 있는 사람의 더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선한 일이지, 그저 사회적 약자를 돌보았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생각하는 것은 공로주의 신앙이요, 하나님 앞에서 공로로 인정받으려 하는 종의 신앙이며, 천국에서의 상급을 염두에 두었다면 그건 악한 장사꾼의 마음과 같은 것일 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어떤 악한 일을 보고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깨닫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선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선한 일들로 사회적인 약자를 돌보는 일이 있다.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해야 할 때가 있어 하게 되었을 때, 아픈 사람을 볼 때 내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병든 자구나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노숙자를 볼 때 '내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추한 나그네와 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듯 살면서 부딪히는 선하고 때로 불미스런 일 가운데서도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 깨달아 가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기에 바울 사도가 그렇게 간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선한 일이던 또 그렇지 못한 일이던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과 나와의 정체성과 관계를 더 알아가서 나 자신이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가 되는 일이 선한 일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저 선한 일을 했다는 것 그것만 있다면 그것은 공로주의 신앙일 뿐이다. 설사 아무런 보응을 기대하지 않고 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 사도는 골로새의 형제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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