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1-13) 우상의 제물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고린도전서 Date : 2023. 1. 24. 06:35 Writer : 김홍덕

고린도전서 8장에는 우상의 제물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흔히 먹어도 되는지 묻기도 하는 제사 음식에 관한 말씀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씀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우상의 제물은 먹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태도에 관한 말씀이다. 이건 배려와 교만에 관한 말씀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의 지혜로 복음을 조명하고 재단하던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복음은 우상의 제물이 시험 거리가 되지 않음을 머리로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아니 복음을 안다면 이런 건 문제가 없음을 알고 있음을 자랑하듯 개의치 않고 먹었다. 바울 사도가 우상 제물에 대해 권면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먼저 알았으니 교만하게 행동하는 것, 이것이다.

 

물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건 신앙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말씀 이후에 바울 사도는 다시 이와 관련해 말씀한다. 그러나 그때도 우상의 제물이 문제의 중심이 된다면 먹지 않을 것을 권한다. 그러니까 우상의 제물을 먹느냐 아니냐가 신앙의 척도나 판단이 되는 상황이라면 먹지 말라고 한다.(고전 10)

 

그러니까 바울 사도는 지금 우상을 섬기는 제사에 사용된 음식을 먹는 것이 죄인지 아닌지를 말씀하려는 건 아니다. 지금은 난 이런 문제를 초월한 사람이란 의도로 아무렇지 않게 어쩌면 더 적극적으로 먹는 사람에 대한 말씀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우상 제물의 문제에 걸림이 되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바울 사도의 권면을 함축한 말씀이 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

바로 81절 말씀이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는 권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을 포함해서 우상의 제물은 먹는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많다고 했다. 그러나 복음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것이라는 말로 또 한번 세상 지혜로 복음을 조명하는 신앙을 책망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복음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아는 것이다. 마음과 생각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건 세상 최고의 가치관을 깨달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세상 지혜로 보면 한껏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큰 반전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지혜의 실체는 바로 낮아지는 것이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지혜, 세상 가장 귀한 지혜를 얻고 보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낮아지는 것이다. 이걸 모른다면 하나님 지혜의 실체를 모르는 것이다. 아니면 세상의 지혜가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존귀한 하나님의 지혜를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 지혜의 본질인 십자가는 세상 가장 천하고 낮은 자리기 때문이다.

 

존귀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알고 보면 세상 가장 낮은 십자가를 지는 생명이 되는 것

 

신앙인들은 우상 제물을 인용한 바울 사도의 책망의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들 구원론에 매몰되어 세상 사람들은 죄 가운데 있고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구분한다. 이런 걸 보통 선민사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예수님은 구원이라곤 하나도 없는 세상에 오셨다. 자신이 정말로 그리스도로 거듭났다면 자기의 구원이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기 위함이란 걸 알아야 한다.

 

이처럼 나의 구원을 단초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차이를 즐기며 믿는 사람은 달라라는 말로 선민사상을 찬양하는 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구원과는 다른 구원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바울 사도의 책망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우상의 제물이 큰 의미는 없다는 걸 머리로 알고 아무렇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신감은 분명 복음을 세상 지혜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우상 제물은 먹어도 무관하다는 걸 아는 지혜에 의지하여 약한 사람이 보고 있든지 말든지 자유롭게 행하는 건 약한 사람은 자기 안에 우상 제물을 먹어도 되는 이유를 제대로 깨닫지 않은 상태에서 먹게 될 것이고, 그건 약한 자를 멸망하게 하는 일이라고 경고한다.

 

복음은 귀하다. 우상 제물은 먹어도 상관없다. 식물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게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복음의 지혜는 자기 안에서 장성하여 몸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건 생명의 법이기 때문이다.

 

흙으로 창조된 사람의 심령에 말씀이 심기고, 성령으로 잉태되고 장성하여 육신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서 행함이 되는 법이다. 바울 사도가 약하다고 한 사람 역시 그 심령에서 복음이 자라고, 자기 안에 우상의 제물이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고 먹고 마시면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자기 안에 이유가 없는데 그냥 먹어도 되는 것으로 습득하는 건 곤란하다. 그건 세상 지혜의 방식이지 생명의 법이 아니다. 생명의 법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약한 자가 장성할 때까지 우상의 제물에 대해 자유한 사람들은 그를 섬겨야 한다. 약한 자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한다. 섬긴다는 건 그를 위해 나의 자유가 구속되는 것이다. 이게 십자가다. 하나님 아들이라면 십자가를 질 어떤 이유도 없는데, 죄 가운에 있는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게 그리스도의 복임이다. 바울 사도는 지금 이 법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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