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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문제는 생각보다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 좀 거창하게 말을 한다면 예수 믿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 것일까?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는 것이 가족이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일까? 


원론적으로 보면 답은 ‘그렇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인생을 거는 비장한 일이지만, 예수 믿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믿어야 하는 그 투철함이나 비장함의 방향이 어디냐의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먼저 왜 예수를 믿는 것이 목숨을 걸어야하는 문제인지를 이야기 해 보자. 그것은 의외로 간단한 문제이다. 사람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 자기 의지로 태어나서 인생을 시작한 이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여자로 태어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나 중동이나 아시아권이라면 더더욱.


그렇듯 인생을 스스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기 인생의 목적,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을 아는 이가 있다면 목숨을 걸고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려 달라고 빌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또 예수님을 믿는 것에 인생을 걸어야 함이 마땅할 것이다. 그가 나의 존재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가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께 사람을 만드셨다는 것을 믿지 않겠다면 적어도 살 동안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어디 다른데서 자기 존재의 목적을 찾을 수 있지 않다면 결국 돈이나 명예나 자식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인생의 의미를 두는 것 이상의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참고로 다른 종교가 사람의 창조에 대하여 언급한 경우는 별로 없다. 


한편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을 믿노라하면서도 하나님께 자기 존재의 목적이나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돈이나 명예와 같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을 얻기 위하여 믿는 어리석은 믿음이 만연한 세상이기도 하다. 지금의 교회가 그렇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가족보다 교회가 우선이고, 먹고 사는 일보다 신앙이 우선이며, 예수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야 하는 것일까? 답은 이미 말했듯이 “Yes”이다. 그러나 방향이 있다고 했다.


이 방향은 가족과 신앙이 다르다고 가족의 의견을 무시하고 신앙에 매진하는 것이나 가족과의 이별을 감수하는 방향이 아니다. 가족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그 신앙을 본받고 싶어지도록 살아내는 수고를 감당하는 방향이 정확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아마 그것은 아주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예수를 목숨 걸고 믿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목숨, 즉 육신의 삶은 그러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육신을 드리심이 그것 아닌가?


가족이 자기 신앙과 다르다고 외면하고 버리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고 결과를 감수하는 것 같지만 실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가장 쉬운 방법에 따르는 결과가 엄청난 것이지 그 선택이 가장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자신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살아내는 것이다. 그것만큼 힘든 일은 없다. 목숨은 그렇게 바쳐야 한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한 것을 듣기 좋은 말로 여기면 곤란하다.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가? 그것은 인생에게 하나님이 의미가 있어지는 것 그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사랑했다고 하셨고, 인생이 스스로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심이 그것이고, 무엇보다 존재하지 않아도 하등 아쉬울 것 없는 인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을 표현하시고자 우리를 그에게 의미가 있게 하신 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가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신앙이 다르다고 대단한 용사가 된 것과 같이 결별이나 외면이나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신앙만 지키려 드는 것이 과연 온전한 신앙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예수가 더 진리라고 생각되면 될수록 그렇지 않은 이를 위하여 자신을 드려서 상대가 자신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에 동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자기 엄마의 신앙이 교회와 좀 다르다고 엄마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는 것이나, 가족이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싫어하니 가정을 박차고 나와서 끼리끼리 모여 사는 것이 좋은 신앙이고 신앙의 결단이라고 하는 것이나, 교회 사람들과 노느라 첫 명절에 조카사위 보겠다고 기다리는 처가 식구들을 외면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 아닌 것이다. 그런 신앙은 십자가를 부끄럽게 하는 신앙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예수를 믿는 것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데 뭔 소용이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의인이 죄인을 위하여 죄인이 된 사건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주장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이다. 그런데 그 예수를 믿는데, 그 십자가를 지고 간다면서 자기와 신앙이 다르다고, 때로는 자기 신앙에 미치지 못한다고, 또 교회와 다른 생각을 했다고 외면하고 내치는 것이 어떻게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 것인가?


학창시절 구정이면 교회 목사님께 세배하러 갔었다. 가면 그 목사님은 장로든 누구든 빳빳한 천 원짜리를 세뱃돈으로 주시곤 했다. 그 목사님께서 어느 해 세배하러간 나와 친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것은 예수를 믿되 똑바로 믿는 것

이라고 


우리 제발 예수 좀 똑바로 믿자. 똑바로 목숨을 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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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를 마칩니다.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빌립보서 Date : 2017. 9. 23. 21:41 Writer : 김홍덕

빌립보서는 참 은혜로운 성경입니다. 전편에 흐르는 <기뻐하라>는 말씀이 그렇습니다. 또 바울사도의 다른 서신서에 많이 나오는 책망의 부분도 거의 없다시피 한 것도 그렇습니다. 물론 바울사도와 빌립보 성도들의 돈독함도 참 보기에 좋은 성경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모든 것에 흐르는 것,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 그 마음을 가졌기에 앞서 언급한 은혜로운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사도가 옥에 갇혀서 쓴 편지라는 것입니다. 옥에 갇힌 사람이 뭐 그리 기쁜 일이 있다고 자신은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기뻐하라고 말했는지를 아는 것이 빌립보서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사도가 말하는 기뻐하라는 것은 육신의 어떠함과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교인들처럼 억지로라도 기뻐하면 ‘좋은 일(육신의 좋은 일)’ 생긴다고 하는 것에 이 빌립보서를 인용하는 것은 빌립보서를 모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말하는 기쁨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으니 그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날(푯대)까지 이루실 것이라는 것이 기쁨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사람 안에 있다는 것은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분명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이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니,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잘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잘 살게 하시고, 하는 일도 더 잘되 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육신이 잘 되어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협상을 합니다. 거의 위협 수준입니다.


하지만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마지막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형편은 부족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좋게 지어져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싶어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업가들이 성공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하나님을 믿을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어야 기뻐할 수 있거나, 하나님의 일이 되거나, 복음이 전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에 기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육신이 살 동안 표현되도록 자기 삶을 순종하는 것을 푯대로 또 그리스도의 날이라고 칭하여 그렇게 되기까지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드신 뜻이고 목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인생의 어느 한 구석이 허전하고, 또 ‘내 신앙이 온전한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당하여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가 전혀 의심이 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이렇게 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만든 목적 안에서 사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예수님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를 열심히 해야지’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기도를 조금 안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의심합니다. 그런 것은 모두 행위에 기반을 둔 신앙입니다. 교회에 가지 않으면 신앙이 약해진다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로 하지 않으면 재산상에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것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 신앙인들이 억지로라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웃는 연습을 합니다. 심지어 설교시간에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권면은 그것이 아닙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것이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그것이 없으면 억지로 기뻐하려고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아니 어떤 성경을 대하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의가 나의 존재 목적이 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시작하신 하나님의 착한 일이고, 그 의로 인하여 육신의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는 것이 우리 삶의 푯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을 위하여 우리는 이미 풍족하게 다 가졌습니다. 이 육신이 그것을 위하여 지음 받아서 지으신 하나님의 보시기에 심히 좋은 것이기에 그렇고, 또 목적을 주신 이는 그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셨기에 그렇고, 무엇보다 그의 능력이 그렇게 하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여호와이시기에 그렇습니다.



(Translation by Google)


I finish the Philippians.


Philippians is a gracious Scripture. There is the saying "please rejoice" flowing in the first part. It is also true that there are very few parts of the rebuke that appear in other Epistles to Paul. Of course, the strength of the Apostles and Philippians is also good. And above all, flowing in all of these things, being a man of Christ's heart, enabling the gracious things mentioned above in the mind.


Philippians is an oxford letter. It is a letter written by the apostle Paul in prison. It is to know Philippians that knowing that a prisoner told them that there is something pleasant and that they should rejoice even to those who love themselves as well as themselves. So the revelation of the Apostle Paul does not have anything to do with the flesh. It is to ignore Philippians that quoting this Philippians in saying that "good works (good works of the flesh)" occurs if you are forced to do so like the present members.


The joy of the Apostle Paul is rooted in Christ's heart. We have the heart of Christ, so please rejoice. It is the root of joy that the one who has begun to do good in you will fulfill the day of Christ (the mark). When Christ's heart is in man, it is a life whose purpose and meaning is clear. This is because the Bible says that the person whose life purpose is clear is the Son of God with the identity of Christ.


All the Bible, but the Word of God is not about the flesh. However, the reality is not so. I know what people see as praying to God. We must do the work of God, and we must live well as Christians in the world, and we are glorified in God. God makes us live better than those who do not believe in Jesus. It is said that the work of God is good if the body is good. Negotiate with God. It is almost a threat level.


However, the Apostle Paul said that he was not in need of his preaching the Gospel at the end of Philippians. Money does not mean that you can do God's work. It is not that when the church is built well, it becomes a glory to God and that people in the world want to go to church. If the businessman believing in Jesus succeeds, then it is not that people will believe in God more. It does not mean that it can be rejoice, that it is God's work, or that the gospel is delivered.


It is a pleasure to have the heart of Christ to be glad to be called the subject of Philippians. It is the will of God to live by faith in the obedience of his life so that his heart will be expressed during the flesh of the flesh. It is the meaning and purpose of God making our people.


Many people believe in God, and one corner of their lives is lost, and there is doubt that my faith is perfect. At any moment, under any circumstance, it is difficult for you to become a son of God without any doubt, even if something happens to you or is committed to you. There is only one way to do this. It is only that God lives in the purpose of making Himself.


Otherwise, a person who has the same mind as 'We must pray diligently so that faith in Jesus Christ will not weaken' doubts himself when he does not pray a little. It is all faith based on conduct. If you do not go to church, your faith will be weak. If you do not pay tithing rightly, you will also lose property. When such believers feel compelled to do so, they practice deliberately, saying that God will bless them. I even give it to the sermon.


But it is not the counsel of the apostle Paul. "Bear this heart in you, the heart of Christ Jesus." This is the essence. If there is a mind of Christ, there will be joy, and if it does not exist, it will be a force to rejoice. Therefore, the first thing to do is to have the righteousness of God as my purpose, not as a Philippian or any Bible.


That is the good work of God that has begun in us, and because of it, it will be the goal of our lives to live to the day when the life of the flesh is full. And we have already done enough to live that way. This flesh is very good for the sight of God made for it, and he has prepared all things for his purpose, and above all, because his power is not so short as to be 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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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04

Category : 미디어 말씀 파일/마가복음 Date : 2017. 9. 23. 16:12 Writer : 김홍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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