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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8) 복음의 시작 그 이전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마가복음 Date : 2022. 1. 22. 06:46 Writer : 김홍덕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서 시작한다고 선언한 마가복음은 먼저 복음 이전을 이야기한다.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 이전은 세례 요한의 세계라고 말씀한다. 마가복음뿐 아니라 공관복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이전은 세례 요한의 세계라고 말씀한다. 복음은 세례 요한의 신앙이 끝나야 시작된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은 모두 회개하라.’라고 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외쳤을 때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했고 예수님께서 전하셨을 때는 <천국의 복음> 전한다고 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막 1:3-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광야 소리 세례 요한의 정체성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좇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된 복음 이전의 신앙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전의 신앙은 광야와 소리로 정체성이 정의된다. 여자가 낳은 중의 가장 자라는 말에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와 같은 신앙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은 여자가 낳은 자다.

 

광야는 애굽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한 > 이르는 동안 거했던 곳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한 땅은 종이었던 그들에게 복음이기에 가나안에 들어가기 그들의 모든 삶은 광야다. 그리고 어느 시대라도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이 시작되기 모든 삶은 자체가 광야의 삶이다.

 

광야에는 복음이 없었다. 소리만 있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소리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도 단지 하라, 하지마라 나눠진 신호로만 들었. 휘슬을 불면 달리거나 멈추는 운동선수처럼 불기둥이 나타나면 가고 구름기둥이 일어서면 멈춘 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이었다.

 

오늘날 거의 모든 기독교인의 신앙은 광야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려고 기도하고 심지어 무당을 찾듯 영빨 있다는 사람을 찾는 이들의 모습이다.

 

목사를 찾아가서 육신의 일을 어떻게 것인지 묻고, 목사는 태연하게 성경을 인용하고 기도하면서 의견을 말하는 것은 성경을 복음이 아니라 소리로 듣는 것이다. 이런 신앙은 모두 광야에 있는 신앙이다. 신앙이 끝나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시작된다.

 

마가복음을 비롯해서 마태, 누가복음 모두 세례 요한이 죽고 다음부터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셨다고 말씀한다. 개인에게서 광야의 신앙, 성경 말씀을 하라, 하지마라 신호로 여기는 신앙이 끝나야 복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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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066(5:13-17) 죄와 사망

Category : 미디어 말씀 파일/요한1서_오디오 Date : 2022. 1. 19. 11:40 Writer : 김홍덕

사망에 이르는 죄,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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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그대로 복된 소식이다.(Gospel 어원은 Good News(spell)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떻게 사람에게 복된 소식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을 기준으로 두고, 복을 이루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식의 대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믿으면 문제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과는 다르다. 사형수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을 있는 모습이라 수는 없다.  그런데 단순하게 사람과 세상이 가진 복의 개념 하에 예수님을 무작정 복음이라고 여기면 결국 육신의 평안과 세상에서의 성공을 예수님께 바라는 신앙이 된다. 바로 오늘날 교회가 이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예수님과 같이 그리스도(a christ) 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한다. 거듭난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새로운 생명, 생명이 가진 본성으로 사는 새로운 시작이 거듭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시작이다. 따라서 복음은 그리스도서 살아가는 삶이다. 시작이 예수 그리스도다. 마가복음은 바로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세상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세상에서 되는 것이 복이라면 세상에 복음은 넘친다. 어디 가나 세상에서 되는 법이 여기 있다고 외친다.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것이라고 하신 말씀대로다. 그리스도는 메시아, 구원자란 말이니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말들은 사람이 세상의 복을 받지 못한 자리에서 구원하는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외치는 것이다.

 

만약 예수님도 그런 복을 주는 부류라면 굳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십자가를 이유가 없을 아니라, 예수님을 복음의 시작이라고 정의하면서 성경을 이유는 매우 빈약하다. 사람이 바라는 복을 외치는 소리는 세상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 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는 그런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인생에게 진정한 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시는 진정한 복을 알아야 한다. 알아야 그것을 말할 복음으로 들린다.

 

마가복음은 말씀을 하는 복음서다. 물론 다른 성경 모두가 그렇다. 요한 사도는 마가복음이 말씀하시는 <시작> <태초>라고 했다.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이 시작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시작을 세례 요한부터 설명한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다른 점을 부각시키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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