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은 이 순간에 일어난 게 아닙니다. 이 순간 자기 살자고 한 부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사건을 베드로의 배신으로 보는 큰 이유가 이걸 이 순간의 사건으로 보는 탓도 큽니다. 베드로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손꼽히는 용감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무모한 사람이었다고 비판한다면 몰라도 비겁하게 자기 살자고 스승인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이 아닙니다.

 

시작은 변화산에에 올라가기 전,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때부터입니다. (이때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갈릴리와 예루살렘으로 유월절을 지키러 올라가시면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하시면서부터 시작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진다는 말씀에 패닉에 빠진 제자들

 

핵심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그리스도 당사자인 예수님과 제자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이 달랐다는 것입니다. 이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세베데가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두 아들을 좋은 자리에 임명해 달라고 청탁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관한 관점은 제자들만 달랐던 건 아닙니다. 백성들도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니까 죽은 자를 살리고 오천명을 먹인 예수님이 왕이 되어, 로마로부터 독립할 뿐 아니라 가난과 질병이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기에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지만, 그렇게 그리스도라고 기대했던 예수님께서 오히려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잡혀서 심문을 받는 모습을 보고서 “저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네!”라며 분노하여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구원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이 관점의 차이는 제자이나 당시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도 예수님과 다른 그리스도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걸 가장 먼저 확신한 사람은 다름 아닌 가룟유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향유옥합 사건 때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그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그런 자기 결정에 인생을 걸었고, 백성들은 바라바를 선택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무슨, 그냥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는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도 없는 개념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만은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배신한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도라는 우상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당연히 베드로 역시 그렇습니다. 가야바의 뜰에서 한 베드로의 대답은 “나는 예수님과 관계 없다”라는 부인이 아니라 “나는 도저히 채찍 맞고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를 알고 있지 않다”라는 솔직한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비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에 관해 알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한 것이다!

 

베드로는 칼과 뭉치를 들고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군병들을 향해 단검 하나 들고 덤빈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오라 하니 풍랑이는 바다로 뛰어들 용기가 있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가 믿음을 잃고 빠진 것에서만 교훈을 얻지만, 미래가 불확실해서 지칠 정도로 내일 있을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불안한 마음으로 구하는 우리가 파도 위로 뛰쳐나간 베드로를 논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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