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7장)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일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물론 이 일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는 일에 비하면 기적에 비할 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전개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이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바란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승리를 얻기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살펴보려 한다.
골리앗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위대한 힘이다. 상대를 제압하는 크고 강력한 힘은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힘에 대한 본능적 기대와 소망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그런 힘을 의지하는 삶이 아니다. 그런 게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그걸 문제를 해결하는 근원적 원리로 보지 않으며, 그런 힘으로 얻을 수 있는 인생의 편리와 평안이 우리 삶의 목적이나 지향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것들은 목적을 위해 일어나기도 하는 일이다.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싸우지만, 나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싸운다”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라는 말 속의 ‘이름’은 호칭이 아니다. 이건 정체성이다. 휴대폰이라는 이름은 휴대하여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전화기라는 정체성을 대변하듯 이름은 그 존재의 정체성이다. 골리앗의 정체성은 칼과 창이다. 세상의 강함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다윗의 무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정체성
반대로 다윗의 방법은 여호와의 이름, 곧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믿음이다. 잠언의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여호와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고 했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려면 근원적으로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건 진화론을 믿느냐 창조론을 믿느냐를 조명하는 각도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원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문제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명철이자 영생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세상의 모든 경영과 원리와 이치는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걸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의 해답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믿어야 한다. 그러면 그 원리와 이치와 해답은 모두 하나님의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된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는 건 세상의 모든 이치와 원리와 방법 그리고 힘과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믿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에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걸 이기는 힘
또한 다윗은 골리앗을 일컬어 할례가 없는 자라고 했다. 이건 육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하나의 증표인 할례 이야기가 아니다. 할례는 형식과 내용 중 무엇을 본질로 보는 사람인지를 구분하는 표식이다. 우리 육신은 우리 자아의 겉모습이자 껍질과 같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내용의 표현하는 형식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도구다. 그래서 할례를 받았다는 건 하나님처럼 외모가 아니라 속사람을, 육신이나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본질로 보는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할례가 없다는 건 하나님의 정체성이라는 내용을 보지 못하는 상태
칼과 창이라는 도구로 전쟁에 나선 골리앗을 ‘할례 없는 자’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한다는 건 쥐뿔도 모르는 놈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용과 본질인 하나님의 의는 모르고 껍질과 같은 크고 위대함으로 세상을 이기려는 건 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는 다윗에겐 이게 보였지만 다른 사람에겐 이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윗이 이긴 것이다. 세상에서의 삶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인 것 같지만, 그 껍질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이 진정한 힘이고 본질임을 아는 것이 할례를 받은 것이고, 그런 영적 할례가 있어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 내용이자 본질인 하나님을 알아야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면서 해결한다. 문제와 어려움은 하나님의 뜻과 의대로 살지 않아서 겪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사랑과 긍휼로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문제를 겪는다는 건 당연히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므로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면 해결되는 게 당연하다. 이건 신앙의 범주 이전에 상식적 논리다. 이게 상식이 되려면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살아가면 문제는 해결된다.
우리는 세상에서 문제를 마주하면 그 문제보다 더 큰 힘을 하나님께 구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방법을 달리 궁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고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경영하신다는 걸 믿는다면, 그런 하나님의 경영 아래에서 겪는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다른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돌아서서 간다면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고 평안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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