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상) 17. 요나단의 믿음과 밝음

Category : 평교인의 성경 보기/사무엘상 Date : 2025. 8. 24. 09:48 Writer : 김홍덕

(삼상 14)

삼상 14장에서는 13장에서부터 이어진 블레셋과의 전쟁에 관해 말씀하고 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승리는 요나단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는데 공로는 사울이 차지하는 모양새다. 프로야구에는 유명한 말이 많은데, 그 중에 “3루에서 태어났는데 자기 힘으로 3루까지 온 줄로 안다라는 말이 있다. 야구에서 3루는 선수 혼자만의 힘으로 가기 매우 힘든 베이스인데 자기가 거기 있는 게 자기 힘으로 된 것으로 착각한다는 비유로 자기 공로가 아닌데 자기 공로로 착각하는 사람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사울이 딱 이 모양이다.

 

전투는 요나단이 자기 병기 든 부하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 앞에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요나단이 그렇게 했던 건 그렇게 했을 때 블레셋 군사가 이리 오라고 하면 그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징표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요나단은 그 믿음대로 나아갔고 하나님께서 그런 요나단과 함께 하시므로 블레셋은 자기들끼리 우왕좌왕하면서 혼란에 빠졌고, 그걸 멀리서 본 사울이 그 때를 노려 공격해서 승리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 와중에 사울은 허투루 하나님께 맹세하여 아들 요나단을 죽일뻔한다. 요나단의 믿음과 용맹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자 블레셋을 이길 때까지 아무도 먹지 못하게 하는 맹세를 해서 지친 병사들이 먹지도 못하고 전투에 임해야 했다. 그러나 이를 알지 못한 요나단은 땅에 있는 꿀을 먹었더니 눈이 밝아져 더 용맹하게 싸운다. 그러나 블레셋을 완전히 진멸하지 못하자 사울은 그 이유가 맹세를 어긴 사람이 있다고 판단하여 제비 뽑자 요나단이 뽑히게 되고, 자기 맹세대로 죽이려 했다. 그러나 백성들이 요나단이 하나님께 함께 했다고 신원하므로 요나단은 살게 된다.

 

성경 속 요나단은 우리아와 같은 사람이다.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었지만 영광을 얻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다윗과의 우정으로 유명하다. 사무엘 상 20장에서는 다윗을 죽이기로 한 사울에게서 다윗이 도망치도록 알려주며 둘이 헤어지는 장면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정의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사무엘 상 14장에 나오는 블레셋과의 전쟁은 오롯이 요나단의 전쟁이다. 요나단의 믿음과 용맹으로 이긴 전쟁이란 뜻이다. 블레셋은 철로 만든 병기를 가졌지만 이스라엘에는 사울과 요나단 둘만 철로 만든 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전쟁은 상식적으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에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이 당황하게 하셨고, 땅을 흔들어 두렵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힘만 믿는 아버지 사울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전쟁 중간에는 두 가지 특이한 일이 있다. 하나는 요나단이 블레셋에 잠입하면서 자기가 블레셋 병사에게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블레셋 병사가 블레셋 진영으로 오라고 하는 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징조로 믿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쳐서 꿀을 먹었는데 힘이 났다고 말씀하지 않고, 눈이 밝아졌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두 가지다.

 

일상의 평범함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징조로 믿은 요나단

 

전쟁을 생각해보면 적군이 눈 앞에 나타나면 오라고 해서 잡아 가는 게 당연한 이치다. 블레셋 병사들도 요나단과 그 심복을 보고는 숨어 있다가 기어 나왔다고 조롱했다. 그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요나단은 너무나 당연한 걸 하나님의 징조로 여겼다. 이는 삶의 모든 일이 하나님이 주관하심 안에 있다는 걸 믿는 믿음이다. 누구나 당연히 이 믿음을 가져야 하지만, 사람들은 평범함은 하나님의 경영이라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어김없이 뜨는 것과 같이 일상에서 당연히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징조로 여기지 않는다.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걸 믿는 징조로 기이한 현상과 비범한 일 그리고 기적을 바란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 우주가 운행하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수십억의 사람이 사는 세상을 경영하시는 일보다 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렇게 우리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필요하다는 걸 아시고 늘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별식 같은 기적도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놀라운 능력과 그 능력이 나의 삶을 보전하신다는 건 믿지 않으면서 기적으로 임하는 하나님만 기대하는 건 금도끼, 은도끼를 얻기 위해 자기 도끼를 연못에 던진 얌체 나무꾼과 같은 심보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또 다른 특이점은 지친 상태에서 꿀을 먹고 전투를 치를 힘이 났는데, 이를 두고 기운이 솟아났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힘이 났다고 하는 것이 상황에 맞고 일반적인데 성경은 눈이 밝아졌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유혹이나 세상을 이기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주로 능력을, 세상을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세상을 상징하는 이방의 대표인 블레셋과 싸우는데 꿀을 먹었더니 눈이 밝아져전투를 이기게 되었다는 건 무엇으로 우리가 세상을 이길 것인지를 말씀한다. 바로 올바른 인식, 밝음이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 성경에서 물은 말씀이다. 또 사람의 생존에 절대적 물질이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는 건 사람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말씀과 지식과 가치관을 취해야 하는지를 구분하도록 하셨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상수도와 하수도를 분리한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으로 이방 블레셋과 같은 세상을 이길 수는 없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 곧 밝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세상을 이기려 한다. 그래서 세상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으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이 없을 때는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부자 되게 하시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의학으로 고치기 힘든 병은 의학 이상의 신비한 능력이라는 힘으로 고치려 한다. 그리고 그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그래서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이 갈라지듯 내가 먹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가치를 구분하는 것, 이것으로 세상을 이긴다. 그러니까 눈이 밝아져야 세상을 이긴다. 요나단이 눈이 밝아져서 블레셋을 이겼다는 말씀은 바로 이런 의미다.

 

우리는 오늘 요나단에게서 우리 일상을 돌보시고 안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 일상의 여상함을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믿는 믿음을 배우고, 진정으로 세상을 이기는 능력과 힘은 하나님을 바로 알아 세상을 또한 바로 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요나단을 통해 이걸 말씀하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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