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15장)
사울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소와 양을 살려둔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 좋은 것을 드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게 단순히 변명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건 사무엘이 책망을 하는데도 자기 뜻이 그랬다는 걸 처음에 굽히지 않았다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정말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 좋은 양과 소를 살려 두었는데 그 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택한 걸 후회하시고 버리게 된다.
우리는 지금 사울의 불순종에 대한 설교나 교훈을 익히 들은 상태에서 이 사건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저 남의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신앙인들이 정말로 떨치기 힘든 신앙적 유혹이다. 특히 신앙인들의 공동체이며 ‘하나님의 교회’라는 교회는 정말로 이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아니 사실 거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유혹에 깊이 빠져 있고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누군가가 사무엘처럼 경고해도 오히려 마귀라고 터부시할 정도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도 좋은 것을 드리겠다는 불순종에 빠져있다.
우리는 이런 예와 관련하여 교회가 좋은 악기나 장비를 들이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이상하리만큼 일반으로 더 좋은 것으로 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확정편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사회 정의나 교회의 사회적 책임의 관점에서 과도하게 교회를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는 지적으로 치부할 건 아니다. 신앙 안에서 흔히 ‘세상적’이라는 사회적 가치 기준으로 좋은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확신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다. 그리고 사울의 불순종이 이를 투사하고 있다.
사울이 보여준 불순종의 모델은 비단 교회에만 적용할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교회의 구성원이 신앙인이니 같은 역할이다. 신앙인들의 신앙 일상이 좋은 것을 드리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사울의 불순종 모델을 답습하고 있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좋다”는 기준이다.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 사회의 일반이 좋다고 하는 기준이라는 게 문제다. 사울이 좋다고 한 양과 소는 분명 외모가 기준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고기 육질을, 그것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 분별할 방법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울은 세상의 기준, 겉모습의 좋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다.
아말렉의 소와 양에 대해 하나님이 좋다고 하시는 기준은 모두 죽이는 것이었다. 외모를 보고 좋다고 판단하고, 좋은 것이니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생각은 사람의 기준과 판단이지 하나님의 판단이 아니다. 사람들은 항상 하나님께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걸 드리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바라시는 건 사람이 스스로 좋고 나쁜 것, 선하고 악한 것을 판단하는 마음이 죽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좋다고 여기시는 거 그것이다.
사울의 불순종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불순종의 행위를 덮을만한 숨겨진 교훈 같은 걸 찾기는 어렵다. 그런데 불순종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냥 하나님과 그 말씀이 싫어서가 아니라면 자기 생각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무엇이 좋은 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리가 없다. 자기 생각, 자기 기준, 자기가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예외 없이 사울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적지 않은 순간 하나님께 불순종을 고백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순종하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데 마침 불순종 사건의 대표 중 하나인 사울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그러나 좋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기준이어야 한다. 세상이 좋다는 비싼 악기나, 세상이 좋다고 하는 성공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그저 생각하는 건 불순종의 씨앗을 심어 키우는 것이다. 문득 생각해 보면 아담도 선악과 좋아 보여서 먹었다.
사울의 가장 큰 잘못은 좋은 것에 대한 기준, 곧 선악의 기준으로 자기가 정했다는 것
어떻게 생각하면 그저 제사 먼저 드렸다고, 또 이방신에게 바치려고 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 바치려고 좋은 것을 구별했는데 그걸 가지고 하나님이 버리신다는 건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불순종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경영하시는 세상에서 무엇이 좋은 지를 사람이 결정했다는 것, 곧 자기 선악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조각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건 우리 일상에 좋은 신앙으로 깊이 스며 있다는 걸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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