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하나님의 경영을 관찰 하노라면 의외로 재밌는 포인트가 많다. 그 중에 하나를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바로 신앙인들의 믿음에 관한 것이다. 단 현대자동차가 언급된 건 현대자동차가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다. 주제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공산품을 만드는 제조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글쓴이가 늘 반추하는 묵상의 일부기도 하다.
가끔식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기독교인들은 사실 하나님보다 현대자동차를 더 믿는다.”고. 농담이나 궤변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은 늘 육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교회 대예배 시간엔 나라를 걱정한다. 같은 시간 암송하는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며 하나님 믿는 믿음을 고백해 놓고 실수도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세상이 잘못되었으니 고쳐 달라고 기도한다. 사실 이런 게 궤변이다.
기독교인들은 사실 하나님보다 현대자동차를 더 믿는다
아마도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차를 타는 사람이 제일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는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물건으로 위험이 상존하는 공산품이다. 그래서 신앙을 가진 사람 상당수가 운전석에 앉을 때 안위를 의지하는 기도를 한다. 물론 자녀나 사랑하는 이들에게 그렇게 기도하라고 당부도 한다.
한편 신앙을 가진 사람들 대부분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은 육신의 일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으로 대변하거나, 건강이나 성공으로 대변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런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늘 기도한단 것이다. 더 심각한 건 기독교인의 기도는 이것 뿐이란 것이다. 즉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다. 믿고 있다면 모든 기도 제목을 점유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로 대변되는 공산품들이 고장나면 사람들은 놀라고 화를 낸다. 그래서 제조사나 서비스센터를 가서 화를 내기도 한다. 이렇듯 실망하고 화를 내는 이유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에 대한 배신은 광고와 기업을 믿고 샀는데 이러면 안 되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표현된다. 생각해보면 공산품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조금 더 이야기 해 보자면 심지어 10년 혹은 그 이상 자동차나 전자제품을 사용할 때도 ‘고장 나면 어떻하지?’라며 매번 염려하며 사용하진 않는다. 어떤 건 목숨을 위협하기도 하는데도 그렇다. 오죽하면 ‘안전 불감증’이란 말이 있을까? 그 정도로 고장을 염려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더 신뢰한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만든 물건을 더 신뢰한다. 궤변이나 억척 같지만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할까? 문제의 핵심은 세상의 본질에 대한 관점이다. 사실은 본질이 아니라 나타난 형식일 뿐인 눈에 보이는 세상을 본질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성을 띈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신이 만들어 완성되어 과거가 된 형상을 더 신뢰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 11:3)
예수님께선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께 다 아신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고, 창조 목적에 필요한 것을 모두 아신다. ‘이동’이란 목적으로 자동차를 사는 사람이 주유와 정비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다만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본질로 여기지 않기에 이를 믿지 않을 뿐이다. 오늘 신앙인들 믿음의 실체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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