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 계통의 제사장의 수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하나 예수님은 영원히 계시므로 직분이 갈리지 않는다. (히 7:23-24) 예수님께서 영원하시고 항상 살아있음을 인하여 예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온전하게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이 항상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항상 살아 있다는 것은 언제나 유효하다는 의미다. 계약서나 어음과 같이 기한 있는 증표는 그 기간 중에 효력이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항상 살아 있다는 것은 구원을 얻어야 할 사람이 항상 있다는 것이고, 그들에게 항상 유효할 뿐 아니라 온전한 구원을 주시는 대제사장이라는 말이다. 영원함이 단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항상성을 함께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히브리서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 직분의 온전함이다.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은 죽음을 인하여 세대를 이어가므로 그 수가 많으므로 영원하지 않아서 온전하지 않고, 가장 절대적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은 레위 후손의 대제장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대제사장이 오신 것이므로 이전 것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 오셨다는 것으로 이전과 달리 온전한 대제사장임은 물론이고 항상 살아 있어 어느 세대, 어떤 사람에게도 온전한 구원의 대제사장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원함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태초부터’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영원함을 산정하는 것은 세상의 ‘시작부터’라는 말이다. 그리고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에서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뜻이 영원히 동일하다는 것을 또 말씀하신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시간 개념을 달력의 시간 즉 크로노스적인 시간이라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상태적 시간이다. 이것을 카이로스라고 한다. 크로노스는 객관적 시간, 카이로스는 주관적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후 12시는 점심시간’이라고 정한 것은 객관적 시간 크로노스고, 배 고플 때 점심을 먹으면 그 시간이 점심시간이 되는 개념이 주관적 시간이고 카이로스다.


이것은 논리의 정리가 아니다. 성경을 볼 때 굉장히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지금>은 너희가 내가 가는 곳에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신 자리로 가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지금”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시점까지 시간은 흘렀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을 제자들을 통해 알 수 있지만 모두에게 그 시간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와 같이 시간이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에게나 항상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구속에 속하게 될 때 예수님은 항상 살아 있는 대제사장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당연히 예수님을 죽인 사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항상 살아 있음은 오고 가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구속이 항상 온전한 효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서뿐 아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순종하고 그리스도로 거듭나기를 청하는 말씀이다. 그 청함에 순종하면 그 사람에게 예수님은 항상 살아 있다. 그렇게 항상 유효한 효력을 가지고 있으니 객관적 시간 관념에서도 영원이 되는 것이다. 언제라도 그리스도를 힘 입어 구속을 얻으려고 하면 온전케 하시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 구속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항상 살아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과 그의 구속은 영원하지만 사람이 그의 성품과 구속에 참예하지 않으면 예수님은 항상 살아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영원은 영원하고 항상 유효한 언약에 내가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구속이 영원하고, 그 약속을 하신 하나님이 영원하시니 내가 그것에 참여하면 나도 영원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른 개체로서 내가 영원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품속, 그의 의 안으로 내가 들어가므로 영원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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